요즘 나의 화두는 솔직한 감정표현이다. 나는 늘 솔직하게 말해왔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하는 방식이 조금은 잘못된 것 같다.
나는 스무살때까진 무조건 참는 방식이었다. 우리집은 뭐든 열심히 잘 해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조금이라도 잘못 하면 비난은 바로 오는 분위기였다. 격려 따윈 없었다. 그래서 모두 각자 엄하게 자기 검열을 하며 살아남을 수 밖에 없었다. 가정이 아무리 제일 작은 사회라 하더라도 가정에서 느끼는 특유의 따뜻함과 포근함을 배울 수가 없었다. 나는 여기서 나의 감정왜곡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6학년때 우리반에서 산수인지 전체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가장 잘 해서 뭔가 상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2등도 아닌 3등인 반장이 상을 받았다. 2등을 중심으로 친구들이 모두 투덜거렸고 나는 이미 일어났고 계속 억울하다고 생각해봤자 나만 괴로우니 그냥 신경을 껐다. 그리고 그때 담임선생님을 모두 욕하고 뭐라할 때 나는 가만 있었다. 그런 몇가지 경험을 1년동안 겪었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가고 같은 동네에 계속 살았기에 우연히 6학년때 담임선생님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됐다. 그 선생님께서 나를 못 본척 멀리 돌아가려는 걸 내가 엄청 밝게 반갑게 인사를 했었다. 이 기억 또한 꽤 오래 남았었다. 나는 그때 별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선생님이기에 인사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 선생님의 머쓱해하는 모습 속에서 나에게 잘못했던 것을 느끼고 쾌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모습에 그 선생님의 어른답지 못함을 안타깝다고 꽤 오랫동안 이야기했었다. 나는 아마도 그 당시 그 선생님을 용서하지 못 했었던 거 같다. 극도로 미워했지만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에 대해서에 나 스스로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게 답이라고 정했다. 좋게 말하면 조숙하지만 정말 영악하고 무서운 아이였다. 나는 슬찬이가 이렇게 자라는게 무섭다. 그래서 신경을 쓴다. 결핍이 어느정도는 삶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감정적인 결핍은 상당히 위험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참은만큼 언젠가는 폭발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슬찬이가 몸에 대한 불편함은 어느정도 참지만 마음에 대한 불편함은 표현하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특히나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 "엄마가 선물을 안 사줘서 짜증나. 화 나. 엄마 미워"라고 했어야 옳다. 어릴때 나는 단식투쟁을 했고 엄마는 결국 인형을 사줬다. 그 과정에서 '어차피 사줄걸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었다. 지금은 다 이해한다. 우리 엄마가 나보다 덜 엄격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알겠다.
요즘 내 화법이 슬찬이를 상대로 은근한 협박이 많다고 느꼈다. "울지마" "다 울고 말해" 라고 해야 할 걸 "울면서 말하면 아무도 못 알아 들어" "슬찬이가 엄마를 도와줘"...이런 말들을 슬찬이는 이미 다 이해한다.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들이 뭔지.. 그래서 나를 상대로 "계속 이렇게 할거야"라는 식으로 반항을 하는 중이다. 나는 개인적으론 재밌지만 져주지 않는다. 그래서 슬찬이가 평소엔 나를 더 편해하지만 남편과 나 둘다 화가 나는 상황에선 남편이 더 편하다고 느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하고 싶어'와 '미안할 짓을 왜 해'의 가치관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한번씩 한다. 나는 여전히 타인이나 자기자신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 싫다. 그러나 그렇게 좋지 않을 것이란 걸 알지만 하고 싶다는 것이 있다는게 참 부럽다. 나는 늘 해야한다고 생각한 것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기에...슬찬이는 자기감정에 정말 솔직한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나는 스무살때까진 무조건 참는 방식이었다. 우리집은 뭐든 열심히 잘 해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조금이라도 잘못 하면 비난은 바로 오는 분위기였다. 격려 따윈 없었다. 그래서 모두 각자 엄하게 자기 검열을 하며 살아남을 수 밖에 없었다. 가정이 아무리 제일 작은 사회라 하더라도 가정에서 느끼는 특유의 따뜻함과 포근함을 배울 수가 없었다. 나는 여기서 나의 감정왜곡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6학년때 우리반에서 산수인지 전체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가장 잘 해서 뭔가 상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2등도 아닌 3등인 반장이 상을 받았다. 2등을 중심으로 친구들이 모두 투덜거렸고 나는 이미 일어났고 계속 억울하다고 생각해봤자 나만 괴로우니 그냥 신경을 껐다. 그리고 그때 담임선생님을 모두 욕하고 뭐라할 때 나는 가만 있었다. 그런 몇가지 경험을 1년동안 겪었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가고 같은 동네에 계속 살았기에 우연히 6학년때 담임선생님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됐다. 그 선생님께서 나를 못 본척 멀리 돌아가려는 걸 내가 엄청 밝게 반갑게 인사를 했었다. 이 기억 또한 꽤 오래 남았었다. 나는 그때 별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선생님이기에 인사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 선생님의 머쓱해하는 모습 속에서 나에게 잘못했던 것을 느끼고 쾌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모습에 그 선생님의 어른답지 못함을 안타깝다고 꽤 오랫동안 이야기했었다. 나는 아마도 그 당시 그 선생님을 용서하지 못 했었던 거 같다. 극도로 미워했지만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에 대해서에 나 스스로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게 답이라고 정했다. 좋게 말하면 조숙하지만 정말 영악하고 무서운 아이였다. 나는 슬찬이가 이렇게 자라는게 무섭다. 그래서 신경을 쓴다. 결핍이 어느정도는 삶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감정적인 결핍은 상당히 위험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참은만큼 언젠가는 폭발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슬찬이가 몸에 대한 불편함은 어느정도 참지만 마음에 대한 불편함은 표현하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특히나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 "엄마가 선물을 안 사줘서 짜증나. 화 나. 엄마 미워"라고 했어야 옳다. 어릴때 나는 단식투쟁을 했고 엄마는 결국 인형을 사줬다. 그 과정에서 '어차피 사줄걸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었다. 지금은 다 이해한다. 우리 엄마가 나보다 덜 엄격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알겠다.
요즘 내 화법이 슬찬이를 상대로 은근한 협박이 많다고 느꼈다. "울지마" "다 울고 말해" 라고 해야 할 걸 "울면서 말하면 아무도 못 알아 들어" "슬찬이가 엄마를 도와줘"...이런 말들을 슬찬이는 이미 다 이해한다.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들이 뭔지.. 그래서 나를 상대로 "계속 이렇게 할거야"라는 식으로 반항을 하는 중이다. 나는 개인적으론 재밌지만 져주지 않는다. 그래서 슬찬이가 평소엔 나를 더 편해하지만 남편과 나 둘다 화가 나는 상황에선 남편이 더 편하다고 느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하고 싶어'와 '미안할 짓을 왜 해'의 가치관 사이에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한번씩 한다. 나는 여전히 타인이나 자기자신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 싫다. 그러나 그렇게 좋지 않을 것이란 걸 알지만 하고 싶다는 것이 있다는게 참 부럽다. 나는 늘 해야한다고 생각한 것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기에...슬찬이는 자기감정에 정말 솔직한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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