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7-블로그시작한지1년

감정의 밑바닥

요즘 계속 좀 멍하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기분좋은 멍함이 아닌 몽롱하다는 표현이 맞는 듯 하다. 그러다보니 지속적인 생각이 어렵고 그냥 먹고 자고 일하고 기본적인 삶에 충실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다고 말하지만 한번씩 또 헷갈린다. 감사하다는 것이 마음인가 생각인가 하는 고민이 한번씩 든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빈약한 마음'을 덮으려 '있어보이는 생각'들을 많이 해왔다. 다행히도 시선이 괜찮은 편이었고 내가 선호하는 방향이 요즘의 상식에 어긋나지 않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한번씩 느끼는 불편한 기분이 뭘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제 슬찬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부터 40분정도 떼를 쓰고 울었다. 이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나한테 엄마가 밉다고 나가란다. 여기는 아빠집이라고 아빠랑 살거라고...그 이야기를 듣고 든 생각은 요며칠 아빠가 잘 놀아주고 엄마는 그냥 일상에 바빠서일거라고 짐작해본다. 그리고 울면서 순간 흠칫흠칫 놀라며 "눈을 그렇게 뜨지 마세요. 엄마 죄송해요." 한다.
슬찬이는 정말 예민한 아이다. 요즘 슬찬이랑 노는 것이 재밌고 좋지만 슬찬이에게도 힘들때는 힘들다고 표현할 만큼 솔직하려 노력한다. 이것은 슬찬이가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력하는 중이다. 그런데 어제 슬찬이의 말을 듣고 나의 솔직함은 어느정도까지 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을성 없는 아직 어린 아이에게 보내는 의문의 시선에서 슬찬이는 차가움을 알아챈 거 같다. 그냥 아빠와 똑같이 내 감정에 솔직하게 짜증이나 화를 내는 것이 바른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싫어했고 이제는 부정적인 감정 자체가 나쁜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표현하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그리고 부정적인 표현으로 그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잘못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슬찬이도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하는 법을 꼭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슬찬이를 통해 나도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어제의 사태에 대한 나의 짐작은 7월동안 소소하게든 크게든 장난감도 많이 사고 슬찬이를 위한 이벤트가 많았다가 일상으로 돌아온 슬찬이가 한번씩 내뱉는 "시시해, 심심해" 표현이 극에 달한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장난감은 크리스마스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머리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용납할 수 없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이 어제 폭발한 거일 듯 하다. 슬찬이에겐 "슬찬이가 엄마를 미워해도 엄만 사랑해. 슬찬이가 왜 엄마가 미운지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면 엄마가 또 똑같은 실수를 할지도 몰라"라고 말했지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적당히 무시하고 다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서 실행하는 것 그리고 기분좋게 유지하고 슬찬이에겐 명확하게 한계에 대해 알려주고 슬찬이가 스스로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걸 옆에서 같이 기다릴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2017-블로그시작한지1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정왜곡  (0) 2017.08.11
슬찬이에 대한 생각  (0) 2017.08.10
슬찬이의 일상  (0) 2017.08.07
[영화]라스베가스를 떠나며  (0) 2017.08.06
아이와 휴가  (0) 2017.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