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8살때 너무나 당연해보였던 첫 승진에서 밀리고 난 뒤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참 열심히도 잘 놀았던 것 같다. 농구시즌권을 끊어 농구선수들 구경다니고 하이원시즌권을 끊어 보드타러도 다녔다. 보드는 무서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찍고 근육이 놀라 움직일 수 없었던 그날을 계기로 결국 포기했다. 어린시절 나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했던 피아노처럼....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것은 여행인 것 같다. 뭔가 준비를 해서 알차게 가는 것이 아니라 금요일 떠나고 싶으면 그날 떠났다. 그때 같이 해준 친구가 있어 정말 행복했다. 아마도 우린 그때 청춘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슬찬이를 핑계삼아 그런 여행을 시도하지 않지만 한번씩 꿈꾼다. 그때처럼 훌쩍 한번씩 떠나고 싶다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첫번째 여행지는 동해 무릉계곡이다. 자연의 웅장함과 위대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3번 정도 다녀온 듯 하다. 부산에서 동해시까지 가는 무궁화기차가 밤 10시에 있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서 세수만 하고 목베게와 카메라만 챙겨서 부산역으로 간다. 그리고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사서 기차를 탄다. 그렇게 둘의 여행은 시작되고 기차에서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곤 했다. 불편한 좌석, 웅성대는 사람들의 소리, 목적지에 제대로 못 내릴것 같은 불안감에 깊은 잠은 잘 수가 없지만 나름 아늑하고 즐거운 시간이다.
한번은 둘다 자다가 동해시라는 소리를 듣고 깨서 기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전에 갔던곳이 아니다. 둘다 멍한 상태로 무슨 일이지하고 정신을 차리려고 보니 지금도 기억에 나지 않는 동??란 지역에 잘못 내렸고 우리가 다시 기차에 타려고 하니 출발하고 있었다. 그때 역사 아저씨께서 달리는 기차를 세워주셨다. 다시 기차를 타고 얼마나 웃었는지...달리는 기차를 세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드물것이다. 우리에겐 정말 값진 추억이다.
동해역에 도착하면 새벽6시쯤 되고 역사에는 관광안내지도가 있고 무릉계곡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이 인근이었다. 버스를 타고 무릉계곡에 도착하는 순간 공기도 다르고 산이 참 멋지다. 꽤 유명한 산이었던 듯 하다. 입구에는 큰 절이 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계곡에 있는 큰 바위와 멋진 글씨들...사람이 저렇게 했을까...봐도 봐도 참 멋지다. 여름에 가보면 사람들이 물에서 놀고 있고 한여름에도 그렇게 덥지 않았다. 청설모가 아닌 다람쥐들이 산책로에 나와있고 사람들이 익숙한지 도망가지도 않는다. 무릉계곡에 도착해서 삶은 달걀과 커피로 아침식사를 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우리가 목표한 여행은 끝이난다.
이때는 2010년 3월의 어느날이었고 3월 중순인데도 눈이 쌓여있었다. 너무 추웠고 우리의 기억에 동해시에는 맛있는게 없다. 그래서 다시 기차역으로 가서 바다열차를 타고 강릉으로 갔다가 속초로 갔다. 속초로 간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냥 회를 먹자고 속초로 가서는 10만원정도 준 듯 하다. 너무 비쌌지만 여행하면서 다른데 돈을 안 쓴만큼 마지막은 거하게 잘 마무리하자는 의미로 회를 먹고 속초시를 어스렁거리다 밤버스를 타고 돌아오면 우리의 여행은 정말 끝이다.
어찌보면 정말 별거 없다. 그래서 우리 오빠가 나에게 그랬다. 길에다 돈을 버리고 다니는구만...하지만 그때 그 여행의 과정이 너무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때 함께한 맹희와 나는 코드가 맞는거겠지만 둘이 꼭 같이 뭘 한다기보다 각자 하는데 좋은 풍경이나 맛있는거 먹을때 옆에 있어주는 느낌이었다. 혼자인듯 둘인듯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참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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