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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블로그시작한지1년

[오늘의생각]강박에 관하여

어쩜 이글을 쓰기 위해 지금까지 내 생각을 그렇게도 쓴 것 같다. 지금 삶에 만족하고 산다면 굳이 이 글을 읽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열심히 잘 살고 있고 만족스럽데도 행복하지 않다거나 뭔가 불안하다면 한번쯤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요즘 마음이 참 편하다. 솔직히 몸은 좀 고단하다. 그동안 미뤄덨던 일들이 하고 싶어서 새벽4시반이면 깨곤 한다. 토요일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팬텀싱어 다운받아보고 애드센스가 인정해줄만한 블로그로 만들기 위해 비공개로 뒀던 글들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친한언니를 만나러 명동에 간 김에 멈춰버려 한참 안 쓰고 있던 시계 수리도 맡겼다. 그리고 짬을 내어 명동성당에 가서 고해를 하고 왔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처음으로 제대로 미사를 드리고 왔고 오후에는 어머니께 슬찬이를 맡기고 남편과 뮤지컬 팬텀을 봤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둘이서 정말 오랜만에 대화를 하고 2시 넘어 잤다. 그러나 출근을 해야한다는 명목으로 새벽에 깨서 나왔다. 사실을 이글을 어제부터 쓰다가 슬찬이가 방해를 해서 마무리를 못했기에 마무리하고 싶었다.
하고 싶은것이 많다는것도 역시 병이다. 적당히 쉬엄쉬엄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간 너무 무기력해서 다 미뤄두다보니 이제 모든것이 다 보이고 다 하고 싶은데 시간은 한정적이다. 그래서 몸이 바쁘다. 그래도 마음이 좋아서 한다. 그러나 보통 다른누군가에게 이렇게 하라고 권하고 싶진 않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하는 것 중 원하는걸 우선순위를 정해서 하나씩 하면서 살길 바란다.
내가 상담 마지막날 더이상 물을것도 없고 나의 불만이었던 남편이 변했기 때문에 만족한다고 말하며 가볍게 물었다. 저는 운전이 너무 무서운데 왜 그럴까요?! 앞좌석에만 앉아있어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너무 무섭다고. 그랬더니 너무나 간단하게 죽기 싫어서죠. 그랬다. 아 그렇구나 하고 그때부터 고민했다. 내가 죽는 순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며 늘 지금 죽어도 될 만큼 열심히 살려고 했던 것이 다 죽음에 대한 강박이구나로 이해된 것이다.
나에게 죽음이란 갑자기 닥치는 일이다. 중학교 3학년때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의 아빠가 여름휴가때 바닷가에 가셨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내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첫번째 죽음이다. 그때 나는 그 친구와 그 친구 집에서 놀고 있었고 그 소식을 듣고 친구는 병원으로 나는 우리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청 울었었다. 그리고 집에서도 계속 울었다. 내가 그 친구도 좋아했지만 그 친구의 아빠를 너무 좋아했었다. 그 친구의 아빠는 택시기사셨고 3일 일하시고 하루 쉬셨다. 그래서 그 집은 4일마다 잔치가 벌어졌다. 나는 그 분위기를 너무 좋아했고 그집에서 거의 살았다. 그렇게 그친구의 아빠가 돌아가시고는 그 집에 대한 기억이 없다. 물론 그 친구와는 여전히 연락을 하고 지낸다. 그친구와 함께 한 추억이 참 많다.
그리고 두번째 죽음이 우리 아빠의 죽음이다. 내가 25살때 1년간 과외를 3개씩 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1년 대충 공부하고서는 시험에 떨어지니 내가 붙는건 보여주고 하든 안하든 그때 가서 선택하겠다는 마음으로 휴대폰도 끊고 공부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그날도 새벽에 나가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점심때쯤 학원으로 전화가 왔고 나를 찾았다. 아빠가 돌아가셨단다.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잠시 쉬는 것처럼 계셨단다. 츄리닝 차림으로 빈소에 갔다. 솔직히 현실감각이 없었다. 이해도 안 되었고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그때 빈소에서 3일간 참 많이도 잤던 거 같다. 그리고 장례식이 끝나고 바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 이후 아빠의 묘소에 간 적이 없다. 그리고 4개월 공부하여 26살 봄에 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냥 쭈욱 살았다.
아빠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조차도 회피하며 살았다. 우리아빠는 참 좋은 사람이다. 정말 열심히 사셨다. 내가 우리집을 표현할때 몰락한 양반가라는 표현을 가끔한다. 친척도 많고 뭐가 있지도 않은데 제사다 명절이다 모이면 어찌나 자기들 있는거 내세우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어린 내 눈에 우리 아빠는 어린시절 할아버지께서 두집 살림을 하시며 있는 돈도 탕진하시고 혼자 부산으로 나와 자수성가를 하신 분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고통을 우리한테 표현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갑자기 떠나셨다. 그런 아빠의 고단함도 나는 어린시절부터 깨달았던 것 같다. 그래서 아빠가 불편했다. 오히려 늘 불만 가득한 엄마가 더 편했던 것 같다. 아빠는 어려웠다. 내가 아빠를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이 참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빠가 아침에 등교길에 데려다주려고 하는 것도 마다하곤 했다. 그래서 아빠와는 추억이 없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리석었다.
그때부터였나보다. 너무나 정직하고 성실하셨던 우리 아빠의 죽음을 바라보며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정말 서럽게 많이도 울고 갔다. 미안해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사람이 갑자기 죽는다는 것이 무서웠다. 그러나 아빠가 돌아가시고 정리하면서 우리가족은 안도했다. 아빠가 하던 사업이 꽤 어려웠고 아빠의 죽음으로 그나마 있는 집은 유지할 수 있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죽음을 애써 외면했고 나는 시간에 대한 강박이라고만 생각해왔다. 시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그러나 것보다 죽음에 대해서 무서웠단 걸 이제 알겠다.
그리고 요즘 마음이 편해지니 성당에 다시 나가고 싶어졌다. 2011년에 성당에 처음 갔을때 예비자교리 수업을 들으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란다. 그분이 불렀고 우리가 응한 것일뿐이란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무신론자였고 세상 모든 것을 내 의지대로 이루며 살아왔다. 그런데 내가 성당의 미사시간을 좋아해서 다시 나가야지 정도였는데 어제 고해를 하러 찾은 성당에서 갑자기 깨달았다. 신이 있는 것 같다. 그러면 모든 것이 이해된다.
그리고 그렇게 혼자서 아등바등 애쓰며 살 필요도 없다. 우리는 감당받을 수 있는만큼 시련을 겪고 도움이 필요할 때 이렇게 찾을 곳이 있는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겪은 모든 고통 또한 내가 너무 똑똑해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그 똑똑한 것을 평생을 내 일신의 편안함만을 위하여 살아왔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수능 2개월전 공부를 포기한 것도 서울에 와서 혼자 사는 것보담 부산에서 사는 것이 편해서였을것이고 지금의 직업을 선택한 것도 편안한 삶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곤 우리 부모님 탓을 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난 평생을 나 이외의 누구도 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분은 알아주시겠지란 마음으로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던 것이다.
어제 새벽미사를 갔는데 성전입구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란 엽서와 사제서품을 받으신지 얼마 안 된 강문식 미카엘 신부님께서 상1동성당에 부임하여 첫 미사를 하시고 안수를 해주셨다. 강론중에도 회개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모든 내용이 나와 일치한다는 걸 깨닫고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내가 성당에 다니지 않았다면 남편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란 후회를 참 많이 했었는데 내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 내가 진정한 깨달음을 얻게 해주시려고 그분이 정말 나를 이끄셨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3명이나 전도했다. 깨달은 지금 내 할 몫이 있는 듯 하다는 느낌이 든다. 어려운 친구들에게 수학과외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는데 이제 수학공부를 다시 해야할 것 같다.

종교를 떠나서 자기자신만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불안할 수 밖에 없다. 도움을 청해야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 강박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도움을 청해야 할 때 도움을 청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도움 받은 걸 감사하며 도움을 줄 수 있을때 돕는 것이 내가 정말 편하게 잘 살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내가 또 생각해본다.
종교가 있는데도 행복하지 않다면 우선을 신을 탓하자, 그리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 내가 정말 내가 하고 싶은바를 열심히 해왔는지 신과 내 자신에게 떳떳한지 생각해보자.
종교가 없는 사람이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지금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조금 쉬어보자!! 그리고 진짜 내 마음에 집중하자. 내 마음과 생각과 몸을 일치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내 역량에 맞지 않은 욕심은 아니었는지, 역량을 키우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것은 맞는지, 내가 원하는 것을 내 노력이 아닌 타인의 노력으로 가지려고 한 것은 아닌지 정말 냉철하게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행복하지 않다면 봉사를 해보자. 나는 고2~3학년때 수학을 참 잘 했다. 그래서 반친구들이 쉬는 시간이면 나에게 와서 묻곤 했다. 그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잘 가르쳐줬다. 가르쳐주면서 내가 완전히 이해하고 복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봉사란 그런 것 같다. 남을 도우면서 자기가 행복한 일...어쩜 지금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내가 가진 행복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도 의심해보면 좋겠다.
그리고 엄마의돈공부란 책에서 보고 실천하고 도움이 된 방법은 감사, 미래일기를 쓰는 것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조금 소홀해지긴 했지만 남편과 둘만 하던 까페가 있었다. 거기에 한달정도 매일 아침이면 간단히 감사일기를 썼다. 어제도 운동을 다녀올 수 있게 배려해주신 어머니께 감사합니다. 운동을 다녀오는 동안 잘 놀아준 슬찬이에게 감사합니다. 귀찮아도 운동을 간 나자신을 칭찬합니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 말이다. 이런 것들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김미경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듯 꿈은 마음이 아니라 몸의 영역이다. 내가 실천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내 꿈을 위한 소소한 실천을 지금부터 시작하자. 바보는 천재를 이길 수 없고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인생을 조금더 여유있게 즐기면서 살기를 바란다. 미래나 과거에 얽매여 지금 이순간을 못 즐기는 바보는 되지 말자!!
이제 나도 조금더 여유있게 즐기면서 살려고 한다. 내가 재밌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말이다. 이 블로그도 조금은 더 편하고 가벼워질 것을 기대한다!! 평범한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삶을 사는지 보여주면서 오늘 하루도 무사히 즐겁게 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