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다니면서 이렇게 긴 연휴는 육아휴직 기간을 제외하고 처음인 듯 하다.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 슬찬이가 아팠고 나는 또 그저 쉬고 싶었다. 그래서 부산을 다녀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예전 같았담 시간을 버렸다고 이렇게 아까운 시간을 하면서 뭔가 허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잘 모르겠다. 하루하루 흘러가는 것에 약간의 아쉬움 외엔 특별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연휴가 시작되고 토요일에는 나 혼자 슬찬이와 함께 홈플러스에 갔었다. 슬찬이는 홈플러스를 정말 사랑한다. 홈플러스에 가서 만들기체험을 하고 레고방에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보통의 코스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일요일에 처음으로 3명이 함께 성당에서 제대로 미사를 봤다. 슬찬이와 함께 간 미사에서 단한번도 집중해본 적이 없다. 이제 적당히 알아서 잘 놀아주는 슬찬이 덕분에 어수선한 유아방이었지만 제법 미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슬찬이는 아빠의 약속대로 또 홈플러스에 갔다. 그리고 코스대로 하고 장난감 코너를 구경하다가 사겠다는 것을 저지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슬찬이는 크리스마스에 새 장난감을 가지는 것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추석보너스를 받은 남편이 기분좋게 장난감을 먼저 한번 사준 것이 화근이었다. 슬찬이는 다시 장난감 구경으로만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사달라고 하고 있다. 결국 이날은 사주지 않고 집으로는 왔지만 이렇게 돌아오면 나는 정신이 쏙 빠지고 짜증이 난다. 내가 생각하는대로 슬~슬~ 흘러가야 하는데 의도하지 않았던 변수들이 생기는 것이 나에겐 혼란스럽다. 아마도 이날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내가 기분이 안 좋았던 것이...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별일 아닌 일로 남편과 또 다투고 남편 기차표를 취소해버렸다. 10일이라는 시간을 이렇게 보낸다는 것이 정말 지옥일 것만 같았다. 내가 슬찬이와 함께 부산을 다녀오는 동안 남편은 휴식을 하고 돌아와서 내가 지쳐있다면 그때 슬찬이와 잘 놀아주면 좋겠다는 것이 내 계산이다. 그리고 이날부터 또 슬찬이는 미열이 났다. 집에 있는 해열제를 먹고 나름 잘 버텼고 남편은 그래도 부산을 같이 가자고 하여 없어진 기차표를 대기를 걸어놨다. 다행(?!)히도 가는 티켓이 금방 다시 생겼고 오는 티켓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 일을 하면서 내 성질머리가 정말 고약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 점점 남편과 나는 이런 성격들을 인정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월요일, 화요일도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추석당일에 어머니댁에 가서 어머니께서 해주신 맛있는 밥을 먹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모신 고잔성당에 잠시 들렀다가 부산으로 출발했다. 부산역에 나와준 언니와 형부덕에 편하게 엄마네집으로 갔다. 그리고 언니와 형부가 미리 장을 봐준 덕에 편하게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뻗어잤다.
목요일에는 엄마와 두 사위는 영화를 보러 갔고 나는 언니차를 얻어타고 오랜만에 할머니를 보러 갔다. 할머니는 이제 여든일곱의 나이답게 기력을 많이 쇠하였지만 할머니를 보면서 생각했다. 우리 할머니가 돈을 좀 가지고 있었다면 참 폼나게 멋지게 살거 같다고...할머니의 인생 전체를 봤을 때는 참 쉬운 적이 없다. 그러나 의연하게 살아내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저녁에 우리 3남매가 모여서 수다를 떨며 늦었지만 엄마의 생일파티를 했다. 오랜만에 본 엄마와 언니, 오빠의 모습이 이제야 내가 원하는 가족의 모습 같다. 엄마가 먼저 손주들과 사진을 한번 찍자고 해서 다같이 가족사진도 찍었다. 엄마가 이제야 진짜 가볍게 사는 법을 조금 알아가는 것 같다고 느꼈다.
금요일 언니네서 또 3남매가 모였다.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동안 나는 조카 태건이가 부탁한 비즈를 맞췄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서 함께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 혼자서 따로 놀고 있는 모습이 나도 조금은 생소했지만 재밌고 좋았다. 다함께 있어도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서로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모인다는게 참 좋았다.
이날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내가 깨달은 건 우리 3남매에게는 할머니가 제2의 엄마였고 삼촌, 숙모가 부모와 같은 큰 존재로 늘 옆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자라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것이 나에게는 좋은 느낌이 아닌 위압감으로 다가왔기에 알아서 눈치보며 혼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노력한만큼 보통은 결과가 좋았고 그때는 몰랐지만 아마도 같이 기뻐해준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늘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 바라는 게 뭔지. 그들 중 누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지.
토요일 오후5시 기차를 예약해뒀었고 남편의 기차표도 다행히도 구해졌다. 4시에 언니네서 출발하여 부산역에 도착한 시간이 4시55분이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네비에 찍힌 도착시간을 보며 기차를 놓칠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부산역 인근에 방을 잡아야 하나 언니네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이런 잡다한 생각을 하며 가는데 형부가 극적으로 도착해줬다. 바쁜 마음에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용산역에 도착하여 다시 어머니댁으로 갔다. 도련님께서 사오신 전어와 새우를 먹고 새벽1시에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오늘 별일없이 하루를 보냈다. 12시쯤 일과를 시작하여 근처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다함께 성당에 다녀왔고 9시에 저녁을 먹고 12시까지 티비를 보다가 슬찬이를 재우고 나도 자려다 아쉬운 마음에 글을 적는다.
이번 명절을 보내며 가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나에게는 참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있어 나는 참 편하게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듯 하다. 내가 손해보지 않으려고 늘 계산하고 냉정하게 살아도 그들이 있어 나도 따뜻한 인간미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슬찬이를 핑계삼아 내가 피곤하거나 피곤해질 것으로 예상될 때는 시간이 되어도 그저 집에만 있었다. 이번에 알게된 것이 집밖에서 나는 훨씬 더 편하며 그렇게 편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움직여준 사람들이 이번에 정말 잘 보였다. 나는 아직도 애 같고 조금만 힘든 것도 싫다고 다 티를 내며 아무것도 안 하는데 그냥 그대로 두고 자기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함께하는 시간을 잘 보내도록 노력해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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