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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블로그시작한지1년

[책]진보의 재탄생-노회찬과 대화 제1장 김어준 회찬씨 농담도 잘하셔

2010년 서울에 올라오고 김어준에 빠져있을 때 김어준이 나오는 책은 거의 다 사서 읽었었다. 그 중에 한권이다. 나는 김어준이 궁금할 뿐인데 이 책은 노회찬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안 읽었다. 최근 라디오를 들으며 노회찬에 빠지기 시작했다. 참 멋진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제 미용실에 들고 가려고 책꽂이보니 보여서 이 책을 선택했다. 그리고 읽다보니 김어준도 노회찬도 내가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정말 두 사람 다 너무나 멋지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뇌섹남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노회찬은 1956년 생이다. 부산 초량의 산동네에서 태어나서 방 한칸에 5식구가 살아야 할 만큼 여유는 없었다. 아버지께서 도서관 관리일을 하고 계셨고 아버지와 어머니 두분다 문화적 소양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아닌 아름다운 감성을 지닌 인격체로 성장하길 바라며 없는 살림에 첼로를 건네주셨다. 운이 좋게 좋은 선생님들께 취미로 첼로를 배웠고 꽤나 연주실력이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영화이야기를 할 때 흥이 느껴진다. 중학교때 감기약기운 때문에 고등학교에 떨어진 것이 첫번째 실패, 경기고를 나와서 서울대에 떨어진 것이 두번째 실패로 볼 수 있다. 고등학교에 떨어지고 1년간 재수하던 시절 유신과 책을 통해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으며 대학을 가서 자연스레 학생운동, 대학 졸업과 동시에 노동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김어준은 노회찬이라는 사람을 우리에 알려주고 싶어 이 인터뷰에 응했다. 그래서 김어준 스타일대로 연애와 일반사람들의 관심사가 노회찬에게도 있음을 끌어내보려 노력하였으나 노회찬은 너무 일찍 철 들어 평생을 그렇게 살다보니 사회의 발전을 위해 연애와 같은 사사로운 감정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이 책이 이미 7년전의 이야기라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참 열심히도 너무 정직하게만 세상을 잘 살아왔다. 그래서 평생이 힘이 든 것만 같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김어준도 참 안타까워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진보정치인들도 좀더 세련되게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야기로 접근해서 정책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주구장창 정책이야기만 하니 재미 없을 수 밖에...그러나 요즘 라디오에서의 노회찬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일관되게 노동운동만 30년을 한 사람으로서의 단단함과 여유가 느껴지고 이제는 이기는 게임을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열심히 산 사람들이 편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사회가 꼭 오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요즘 많이 생각하는 것이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적기라는 것이다. 변화해야 한다고 느낀는 것 자체가 필요하고 그 생각이 들었다면 조금씩 변화를 시도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분명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이다!!

<책 속의 글>

이 땅의 진보는 아직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시하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다. 우리에게 던져지는 물음은 진보가 정당한가 아닌가가 아니라 오히려 이 참을 수 없는 세상에 저항할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2009년의 시간 속엔 참 아픈 기억들이 많이 남겨져 있다. 사람들의 말수가 점점 적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제 꿈을 드러내기를 주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두 차례의 민주정부 10년, 그것을 되돌아볼 때마다 더없이 참담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이 시기가 바로 우리가 빵을 얻기 위해 서둘러 장미에 대한 꿈을 접어야 했떤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10년이 지나자마자 우리들의 꿈은 종결되었다.

나는 다시 꿈을 꾼다. 대학서열과 학력차별이 없고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나라, 지방에서 태어나도 그곳에서 교육받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는 나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지 않는 나라, 인터넷 접속이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 토머스 모어는 고작 하루 노동시간을 여섯 시간으로 줄여놓고 그 섬을 존재하지 않는 섬, 유토피아라 불렀지만 나는 그보다 더 거창한 꿈을 꾸지만 단지 꿈이라 여기지 않고 있다.

진보정당의 꿈을 놓지 못하는 것은 현실가능성이 크기 때문도 아니고, 그 꿈이 너무 아름다워 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도 아니다. 그 꿈 이외에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 꿈이 실현되지 않고서는 정치가 사람의 희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집권을 꿈꾸며 진보정치의 대장정에 나선 지 20년이 되었다. 정당이라는 베이스 캠프를 마련하는 데 10년이 걸렸고, 베이스 캠프를 떠나 현재의 위치로 오는 데 다시 10년이 걸렸다. 최종목표인 정상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다. 그러나 진보의 꿈은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다. 함께 꿈을 꾸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꿈은 현실이 된다.

2010년 1월, 서울에서 노회찬

대담이 있기 나흘 전, 김어준의 여동생 김수아 씨가 갑작스럽게 죽었다. 뒷수습 하느라 여력이 없음에도 노대표와의 약속된 대담 때문에 먼 길을 점심도 못 먹고 달려왔다고 한다. 삼오제를 치르고 온 김어준은 특유의 정돈되지 않은 머리칼과 수염으로 범벅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외갓집과 더 친해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산소 옆에 동생을 묻어두었따고 한다. 무덤 옆에는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고. 대담 중간 중간 계속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에 처리해야 될 문제가 많아 이곳저곳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죄송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받으러 가는 김어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했다.

제 질문은 결국 하납니다. 인간 노회찬이 누구냐 이거지. 인간 노회찬, 넌 누구냐?! 감정이입할 게 뭐 없어요. 아, 이사람도 나처럼 뭘 좋아하는구나, 나처럼 이런 경험을 했구나, 저런 경험을 했구나 할 게 없고 순 운동 경력만 쭉 있으니까, 감정이입 할 포인트가 없다고요.

정치도 연애하는 거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마음 사는 거잖아요. 아직 연애 시작도 안했는데 나는 평생 적금계획이 이렇고, 안방은 이렇게 꾸밀 거고, 이렇게 얘기하는 거랑 비슷하단 말이죠.

아마도 아버지가 64년도 동경올림픽 본닥도 TV를 사셨어요. 아버지가 '얼리어답터'이었던 셈인데, 집에 암실이 있었을 정도니까. 방 2칸이 되었을 때, 사진을 좋아하셔서.

부모님 말씀이 50년대 말에 부산에서 오페라 보러 두 분이 가시고 그랬대요. 문화적 취향을 굉장히 중시하는. 얼마 전에 신문에서 봤는데, 헝가리는 오페라 보는 게 값도 아주 싸고, 시민 1인당 오페라 보는 데 쓰는 돈이 한 달에 3만원인가 그래요. 아이들도 생일 선물 때 오페라 티켓 선물하고. 그런데 그 사람들 생활수준 보면 우리보다 못하거든요. 그런 거 비슷한 거죠. 문화에 대한 로망 같은 게 되게 컸어요.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아버님이 앉으라고 하시더니, 너 이제 중학생이니까 애가 아니다. 그래서 이걸 들어야 된다. 권한게 RCA판이었는데, 베토벤의 <운명>. 처음에 그거 듣고 머리 깨지는 줄 알았어요. 100번 이상 들었을 거야. 토스카니니가 지휘자였는데,토스카니니가 어떤 사람인가를 좔좔좔 외우고, 그 사람이 지휘연습 하다가 사람들 눈 찌르기도 한 에피소드도. 아버지 특기가, 고흐하면 몇 년도에 태어나서부터 시작해서 쫙 얘기하는, 옛날에 도서고나에서 근무했으니까. 원산도서관. 해방 후에. 그때는 뭐 사람도 별로 없고 젊고 빠릿빠릿하니까 시킨 모양인데, 사실상 도서관 책임자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탓인지 문화나 예술 쪽의 교양을 광징히 중시했어요. 제가 초등학교 입시 마지막 세대여서 6학년 12월 달에 부산중학교에 입학을 했어요. 3월까지 할 게 없잖아요. 놀아야 되는데, 어머니가 원칙이 있었어요. 가정형편이 어렵지만 악기는 하게 한다. 이래가지고 악기 하나씩은 하게 된건데. 누나가 피아노. 바이올린이나 첼로 중에 하나 골라라는데 작은 거는 다루기 힘들거다 생각하고 큰 거는 다루기 쉬울거다. 그래서 첼로 하겠다고 그랬지.

부산시립교향악단 첼로 수석주자인 동아대학교 배종구 교수, 그분한테 직접 배웠죠.

쫌 아니다 싶으면 일어나서 대드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엄청 많이 맞았죠.

서울로 오면서 철이 든 거지. 나 혼자다 보니까. 친구들도 처음엔 없었을 거 아니에요. 재수하는 처지에 친구 사귀고 돌아다닐 처지도 아니고. 그러다보니까 사회를 보기 시작한 거예요.

갈 데가 없고 혼자였으니까 책방에 많이 갔어요. 그때는 교보문고도 없을 때였고, 아, 광화문에 범우사가 있었고, 종로서적은 고1때부터 갔고요. 학원이 광화문에 있었기 때문에 그 범주를 많이 안 벗어났어요. 그때 알게 된 책이 <다리>라는 잡지였는데 그걸 매개로 해서 조금 조금씩 넓혀간 거예요. 그거 보니까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10월 유신, 10월 유신이 내가 재수할 때였어요. 너무 놀라서, 그때 시험문제에 자주 나오던 일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제에서 국회해산은 안 된다, O냐 X냐, 이런 거. 국회해산했다고 라디오에서 들리니까 집에 와서 책 찾아보고. 내가 알던대로라면 국회해산할 수 없다고 되어 있는데, 방송에선 방금 들었고. 그래서 국회로 갔죠.

궁금했죠, 사실이냐 아니냐. 장갑차를 보고 이게 사실이구나. 해산됐구나. 나라가 뒤집히는 줄 알았어요. 대통령이 헌법을 어겼으니까. 그런데 그 다음날 잠잠한 거야. 그것도 나한테는 몹시 궁금한 거야. 대통령이 초헌법적인 일탈행위를 했는데. 그때 <다리>지 같은 걸 보면서 아, 세상이 이렇구나. 부모나 교과서로부터 배우지 못한 것들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고 굉장히 호기심이 생기는 거야.

없었던 기억을 만든다는 건 조작이고, 기억도 사후적으로 계속 정리가 돼요. 내가 요즘은 안 하는데 40대 초반까지는 몇 년도, 몇 년도를 떠올리면서 제 인생에 있어서 이 해가 어떤 의미였는가.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해마다 정리를 했어요. 40대 초반 지나면서부터는 어느 때부턴가 그거 안하고 대충 살아가고 있는데. 72년도, 73년도, 74년도, 그런 정리하는 과정에서, 지금 생각하면 참, 고3때 우리가 모였어요. 몇 개의 그룹이 있었는데, 진로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대학을 가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남들이 볼 때는 경기고등학교 애들이 모여 가지고 대학 가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데. 패가 두 패로 갈렸어요. 나는 어떤 입장이었느냐면 데모하기 위해서는 대학 가야 된다. 소수파는 대학 가서 데모하는 게 그 데모가 무슨 데모냐. 학생운동 아니냐. 학생 운동이 사회를 바꾸는 걸 봤느냐. 아니다 이거지. 그러면서 걔들은 나쎄르 이야기를 했어요. 나쎄르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육사 가야 된다, 육사. 4.19 혁명 실패한 거 보지 않았느냐, 육사 가서 적당한 때에 쿠데타를 일으켜서 급진적인 민족주의를. 나쎄르 같은 그런 걸 해야된다. 격론 끝에 의견통일이 안 돼서, 좋다 그러면 각자 알아서 하고 나중에 다시 보자 했고. 결국 4명이 육사시험을 봤어요.

연애는 성공 아니면 실패만 있는 게 아니죠. 이 사람은 이래서 좋고, 저 사람은 저래서 좋으니까. 그런데 연애야말로 마음대로 안 되는거잖아요. 못 해보셨으니까 알 리가 있나!

제가 바둑도 안 하고 포커도 안 해요. 왜 안 했느냐. 일부러 안 했어요. 빠질까봐 경계한 거죠. 바둑 두는 사람이 쓸데없는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제 처지에서 그걸 양립시키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사람이 모든 일을 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두 가지라도 열심히 하면 감지덕지다 생각하고.

연애를 하면 상대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상대에 대한 리액션만 통제가 가능하잖아요. 그런데 연애가 마음대로 안 되니까 성질도 나고 짜증나고 화도 나고 그러다보면 자기 바닥도 드러나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알게 되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건데.

80년대에 <애마부인> 봤어요. 근엄한 금욕주의자라 안 본 게 아니고. 촌스럽게 뭘. 난 결코 모른다고 생각 안 해. 촌스럽다고 생각해.

그 세계까 나름대로 얼마나 즐거운 건지 모르신 거죠, 잘.

내가 더 많이 안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모른다고는 할 수 없어.

나한테는 큰 아픔이고 상실감 같은 게 지금도 좀 있어요. 내가 노동운동도 하고 별짓 다 해본 사람인데도 막상 내가 아이가 없게 되다 보니까 새삼 딱 드는 생각이 모든 걸 다 갖추고 사는 경우가 참 드물구나. 뭔가 하나를 자기가 갖고 싶은 데도 갖지 못하고 사는 경우도 있구나. 이것도 하나의 운명으로 받아 들여야 되는 거 아니냐.

저도 사실 아이에 대한 욕심은 없는데. 아쉽잖아요. 뭔가, 허전하고.

그렇죠. 남들이 볼 때는 제가 평범치 못하게 살아온 것으로 보이지만, 자연스럽게 사는 걸 중시해요. 억지로 뭘 안 하고. 아이도 그렇게 보는 거죠. 아이 있는 게 자연스럽고 좋은 거죠. 그런데 없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불운한 것으로만 볼 거냐. 그렇게만 보진 않아요. 한탄에만 빠져있으면 누가 봐도 그건 아니잖아요. 아프지만 딛고 일어나면 박수쳐 주잖아요. 딱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이후로 내 아이는 아니지만, 그러나 아이들이 좀 더 잘 사는 사회. 이런 게 더 나한테 각별하게 됐죠.

유일하게 스트레스 푸는 게 1년에 두새 차례 낚시 가는 건데, 굉장히 눈이 부셔서 편광했는데 너무 불편해서 아예 돗수 넣은 선글라스를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했죠. 안경점에 갔는데 레이벤이 있더라구. 그런데 값이 그렇게 안 비쌌어요. 선글라스가 두 개 있을 필요가 있어요? 선글라스를 일 년에 몇 번 안 끼니까. 국회의원 된 후에도 야외에 나갈 때 그거 끼면 내가 되게 멋있게 보이는데, 보좌관들이 끼지 말라고. 멋있지 않다고.

이게 10년 됐어요. 똑같은 안경테를 2개 가지고 있어요. 유사시에 대비해서 깨질까봐. 10년 동안 이 테만 쓰는 거야. 제가 그런게 있어요. 잘 안 바꾸는 거. 아까 연애 얘기도 그런 거와 비슷한 건데, 내가 놀랜게 안경이 부러졌는데 똑같은 테를 끼고 오니까 기자 중 한 명이 왜 똑같은 테를 했냐 이거야. 그래서 내가 왜 다른 테를 하느냐. 그 친구는 이왕 새로 하는 거 좀 더 멋있고 안 써본 거 하면 어떠냐는데 나는 똒같은 거 해야지 일관성이 있는 거 아니냐.

이미지를 별로 안 바꾸고 싶은 생각도 있고. 이미지에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이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은 생각도 있고. 마누라 바꿀 거예요?

노조기념일이나 방송국 기념일 때 보면 노트북 가방 비슷한 거, 까만 거, 이런 거 하나 선물 받아가면 달라 그래요. 그러면 그거 들고 다녀요. 아줌마 가방 같은 거 하나. 그런데 내가 봐도 싸구려라도 싸구려처럼 안 보이고, 좀 수수하더라도 괜찮아 보이는 것이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사람은. 이제는 포기했는데 옷도 막 애들 옷 같은 거 있잖아. 고3 애들이 입는 옷 같은 거. 애들이 옷에 신경 안 쓰고 교복 위에 하나 덮고 막 이런 거 있잖아. 그걸 외출복으로, 행사 때도 그렇게 입고 나와요. 추리닝 입고 안 나오는게 다행이지.

제가 왜 계속 이런 질문 드리느냐 하면, 우리나라 진보진영, 혹은 좌파들이 별로 안 멋있어요. 무슨 얘기냐 하면 대학생들이 보기에 쌔끈하고 세련되고, 그래서 아 내가 물질적이거나 사회적으로나 저렇게 성공해야겠따는 롤모델처럼 보이지 않거든요. 안 멋지면 안 따라 하고 싶잖아요.

멋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없어요. 멋있는 거 좋은 거예요. 그러면 내가 골프를 치면 멋있어 보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으면 골프를 쳤겠죠. 그렇게 안 보여지더라구.

만약에 운동가들이 머리띠 말고 잠바 말고 세련된 양복을 입고 의도적으로 노력해서. 겉으로 보기에도 멋있어 보이는 게 좋은 거 아닙니까?

부족하다는 건 인정하는데 그런 걸 거부하는 건 아니에요. 부족하다는 건 인정하는데 문제의식이 없는 건 아니고.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어요. 강남에 있는 피부과 병원 가서 피부 관리 3번 받았어요. 당원 중에 피부과 의사가 있는데, 늘 칙칙해 보이고 피곤해 보인다고. 그게 진보를 나타내는데 더 도움이 되느냐 하면 그게 아니라고. 오히려 진보를 낡고 칙칙하게 보는 데 일조하고 있다.

대표님 얼굴은 대표님 것만이 아니니까. 당연히 해야 되는건데. 진보신당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코디가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보여지는 게 문제가 있다면 어쩌면 최우선적으로 손을 대야하는 영역이다. 왜냐하면 대중은 가장 먼저 접하는 게 이미지니까. 진보진영에서 대단히 정교한 논리나 정책이나, 사실 듣고 보면 굉장히 옳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하는데 옳으면 뭐하냐는 겁니다. 자기들 혼자 옳기만 하지. 접근하기는 이만큼의 거리가 있는데. 그 갭을 줄이는 노력보다는 자기들끼리 얼마나 정교한가 옳은가 이 얘끼만 계속 반복해서 한단 말이죠. 연애할 생각을 안 해. 정책만큼이나 중요한 게 이거라는 거죠. 연애를 안 했는데 어떻게 결혼을 합니까?

요즘 대학생들이 사회의식 부족하고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그 사람들만 탓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그 사람들이 되고 싶은 사람들 기준으로 만약에 진보진영 인사들이 대단히 세련됐다면, 세련됐다는 게 꼭 옷의 의미가 아니라, 되고 싶은 사람 말이에요. 쿨하고. 그럼 그 사람을 따라하고 싶은 건데 그 사람이 지지리 고생하고 피부도 안 좋고. 양복도 세련되지도 못하고. 후줄근하고, 그러면 저런 삶의 모델도 있꼬 무시할 수 없고 존중하고 있지만 저 사람처럼 되고 싶진 않은 거예요. 20대들이.

옛날 혁명가들은 교양인이기도 하고 멋지기도 했어요. 행동도 멋지고 외모도 멋지고 그런데 지금은 꾀죄죄하단 말이에요. 혹은 삶의 일상적인 전투, 생계전투에서 진 사람들 같애. 그러니까 루저처럼 보인다는 거죠. 실제 루저든 아니든 간에. 그렇게 말하면 기분 나쁠 순 있지만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다수다 이거죠.

좀 더 고민해 봐야죠. 나는 그런데 원래 살아온 모습 속에서 아직 발현시키지 못한 것들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야지 나하고 전혀 무관하거나 이런 걸 억지로 만들어서는 오히려 역효과 날 수도 있다고 봐요.

진보진영 일반에 대한 불만 중 한가지는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비춰지냐면 내가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욕망을 배신하는 정당이다. 옳건 그르건 간에. 물욕일 수도 있고 속물적이지만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여러 욕망들에 대해 그것이 부당하거나 과욕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단 말이죠. 마케팅 방법이 틀린 거 아니냐는 거죠.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전 이걸 죄의식 마케팅이라고 부르는데.

진보진영은 거의, 언제나, 항상, 도덕적 우위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리고 옳은 말이에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옳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반박을 할 순 없어요. 그런데 국민들이 학생은 아니거든요. 훈계 받거나 가르침을 받고 싶진 않은 거예요. 그런 얘길 듣다보면, 안 그러면 나쁜 놈처럼, 물론 안 그러면 나쁜놈이야 말하진 않았지만, 스스로 그렇게 느껴지니까 그쪽을 안 쳐다보고 싶은 거예요. 그게 죄의식 마케팅의 한계인데.

니들을 죄인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잘 살자고 하는 거다. 너를 탓하는 게 아니라, 이게 너도 행복해지는 길이다. 이 설득을 하는 방법론에 있어서의 연구는 안 한다는 거죠. 왜냐하면 우리는 옳고, 이것이 정교하고 훌륭한 플랜이고, 다른 정책보다 우위에 있으니 이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멘탈리티가 마치 종교운동의 그것과 비슷하다, 이런 생각도 합니다.

전적으로 공감하고, 유사한 얘긴 나도 하는 편이긴 한데,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실천이 따라야 되고, 또 연구만 할 게 아니라 결과도 나와야하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결과적으로는 별로 진척이 없는 거고, 진척이 없단 얘기는 의지나 문제의식이 부족했던 거 아니냐는 지적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거죠.

절실해야 되는데. 머릿속으론 절실하죠. 그렇다면 실제 행동으로까지 나타나야 되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매우 부족한 점이 아닌가 생각들어요.

제 식으로 얘기하자면, 우리가 어렵게 일을 하다 보니까,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보다는 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또는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데에 너무 매몰되어온건 사실이에요. 제가 가장 문제 있따고 여기는 자세가 뭔가 하면, 나는 감옥 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 감옥 가는 걸 감수하거나 감옥 가도 변치 않겠다는 말이에요. 이것은 좋은 태도긴 하지만 사실 감옥 간다는것은 진다는 얘기거든요.

당한다는 거죠. 당하지 않고 적을 무찔러야 되는 무찔러서 어떻게 하겠다는 포부보다는 패배주의가 앞서거든요. 그러니까 그 속에는 뭐가 있냐면, 이기기는 힘들 것이다. 질 가능성이 더 높다, 지더라도 변치는 않겠다, 이런 얘기갈고요. 그건 생존을 위한 철학은 될 지 몰라도, 변혁을 위한, 변화를 시키는, 이겨야 변화를 시키는 건데, 그 길은 많이 못 미치는, 그런 점에서 패배주의가 짙게 깔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행태나 운동방식도 그걸 못 벗어나고 있다.

예전에 히딩크가 이태리 전 할 때요. 막판에 공격수 5명을 집어넣었잖아요. 홍명보를 뺴고. 그런데 저는 그 장면을 보자마자 어떤 생각을 했냐면, 지면 어떡할까. 아, 우리는 이만큼인가 보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따. 지더라도 실망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열심히 지는 걸 준비 했어요. 그런데 히딩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냐면, 어떻게 하면 이기지, 이게 아니었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이길 것인가만 생각해서 이기게 된 건데, 그래서 제 생각에는 경기는 미리 이긴 사람만 이긴다. 머리속에 오로지.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 연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진보적 결의와 인문학적 소양의 그 절묘한 동거. 이미 어린 시절 정치적 출가를 한 그가, 사욕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그렇게 오랜 세월 지켜내면서도 동시에 경쾌하고 발랄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한 번도 존재한 적 없었던 유형의 진보 정치인이다. 그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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