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직군, 직함 등 그 앞에서 우리가 약해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나라보다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문턱증후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턱증후군, 즉 그 문턱만 들어서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믿음에서 시작되는 잘못된 증상이죠.
지레 주눅이 든 겁니다. 우리가 너무 무조건적으로 어떤 권위를 인정하거나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청와대를 BH니 높으신 분들 이름을 JP니 YS니 회장 이름마저 OJ, KM 이렇게 범인들이 함불러 불러서는 안 될 이름처럼 취급하는 것,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는 어디서건 꼬물꼬물 흘러 나오는 그 얇은 권위의식이 싫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광고 일, 저 역시 사기꾼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잘'하면 되는 겁니다. 의사도 판사도 아니고 사기꾼 소리나 듣는데 그냥 먹고살 정도로만 대충 해야지, 이런 수동적인 생각으로 일하고 싶지 않아요. 난 이 일을 가장 멋지게 하고 싶습니다.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니까요. 바깥의 권위에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포일드 어덜트,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없고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말하죠. 패는 의사, 정직하지 못한 검사
동의되지 않은 권위에 대한 굴복.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 같고요.
지금 제 강의를 들으러 오신,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저에 대한 호감이 있을 텐데 감사한 일이고, 저도 잘 하고 싶어요. 여러분께 좋은 샘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저를 믿지 마세요. 책 한 권 읽고 사람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한 분야에서 오래도록 일했고, 인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니지만 주머니에 손 넣고 계단을 오르다가 넘어져서 머리에 반창고를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기도 해요. 박웅현이라는 사람이 생각보다 후진 사람일지도 몰라요. 내가 옳다는게 다 옳지 않아요. 어떤 부분에서는 잘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잘못도 해요. 또 어떤 부분은 신뢰할 만하지만 어떤 부분은 허술하기도 해요. 그러니 이걸 나눠서 볼 줄 알아야 하는 겁니다.
딸아이가 본인의 페이스북에 제 사진 두장을 올렸어요. 하나는 [책은 도끼다]에 삽입한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겨울 집에서 아내가 음식 준비하는 것을 도울 때의 모습이에요. 집사람이 준 앞치마를 두르고 잘 못하니까 최대한 집중해서 까고 있었죠. 저는 그게 창피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게 제가 사는 모습 같아서 좋더라고요.
의사들은 훌륭한 기능인입니다. 그 분야에서 정말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죠. 하지만 사회가 돌아가는 것, 문화적인 소양 등 모든 것에 있어서 최고는 아닐 겁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게 불완전한 사람들인데요. 문턱증후군 때문에 문턱을 넘은 일부 사람들은 완전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믿지 마세요.
우리는 어떤 문턱을 넘은 사람들을 볼 때 나보다 나은 부분만 봅니다.
'스타로서의 업적에 대해서는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때로는 감격합니다. 하지만 집으로 가면서 "난 내 이름을 딴 행성도 있지"라고 하지는 않죠. 난 여전히 리버풀에서 버스를 타고 다니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폴 매카트니'
저는 위인전을 싫어합니다. 위인전은 우리들을 좌절하게 만들죠. 그 이야기를 읽다보면 위인들은 어려서도 위인이었을까 싶어요. 싸움 한번 안 하고 부모님 속 한번 안 썩이고 자랐다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물론 압니다. 그들의 인생을 왜 그렇게 구성하는지 알겠어요. 짧은 시간에 사람들을 집중시켜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을 왜곡시킨다는 게 함정입니다. 진실의 한쪽 부분만을 아주 강하게 비추는데, 그것은 매우 위험한 방법입니다. 위인들도 아빠고 엄마고, 기저귀도 갈아줘야 하고 생강도 까야 합니다. 어떻게 별을 가진 사람이 생강을 까?라고 하면 안 된다는 거죠. 그런데 대부분 그렇게 생각해요. 어떻게 회장님이 생강을 까?
이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의식 같아요. 문제는 이 권위의식을 윗사람들은 잘 고치려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이 스스로 이걸 없애나가야 합니다. 우선 가까이 있는 저를 먼저 검증하세요. 박웅현의 말이 얼마나 옳은지 보고, 옳은 부분은 좋아하되 그렇지 않은 부분은 반면교사로 삼으세요. 박웅현만이 아니라, 선배, 교수, 부모님 모두를 상대로 그렇게 하세요. 이게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사장님이나 회장님 만나면 당당하게 인사도 하세요. 어쩔 줄 모르고 구석에 서 있지 말고, 이야기 나누면 되는 거죠. 어떤 상황에서도 비굴하게 굴복하지 마세요. 똑똑한 젊은 사람들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너무 슬퍼지는 것 같아요.
사회는, 기득권 세력은 고분고분한 사람을 원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도발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될 테니까요. 때문에 권위를 보이면서 복종하고 따라오라고 무언의 협박을 하죠. 우리는 그런 가짜 권위들을 검증하는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계급장을 떼자는 겁니다. 저는 윗것으로서 회의실에서 계급장을 떼려고 합니다. 매번 성공하지는 못합니다. 많이 실패하죠.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합니다. 인턴이건 팀장이건 '누가'하는 말이냐가 아니라 그 말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듣고 보려고 애씁니다.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이 먹어 윗것이 되었을 때 권위를 부리지 않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권위는 우러나와야 하는거예요. 내가 이야기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인격적으로 감화가 돼서 알아줘야 하는 거예요. 그게 권위입니다. 절대 긴 복도가 권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거죠.
광고회사에는 갑도 있지만 을도 있습니다. 이렇게 분류하는 게 우습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나눈다면 우리와 일을 함께하는 프로덕션 스태프들이 을의 입장이 되겠죠. 저는 그분들을 대할 때 조심스러운 태도를 갖추려고 노력합니다. 정말 노력해요. 하지만 나도 모르게 풀어질 때도 있어요. 광고주나 어느 회장을 만날 때 권위에 기죽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어느새 긴장하고 있고 프로덕션 사람들을 만나면 저도 모르게 앉는 자세부터 편안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쓰고 긴장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팀원들에게도 "갑을 만날 때에는 을처럼 대하고 을을 만날 때 갑처럼 대하라."라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이건 일을 할 때 아주 중요한 덕목입니다.
여러분도 자신한테 강요되는 권위, 긴 복도, 복잡한 의전, 회장님, 판사라는 껍데기뿐인 직업과 직함에 저항하세요. 그런데 판사가 정말 속까지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이 되면 그 권위에 굴복해야죠. 회장님의 회사를 일군 역사를 보니 존경할 만하다 생각되면 굴복하고 다음 날 회사 안건에 대한 회장님 판단이 옳지 않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인정하세요. 우리는 그게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한데 말이죠.
인생을 멋지게 살고 싶다면,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 약해져라.
'영국인들은 외부의 법규는 모름지기 개인 내부의 입법자에게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니코스 카잔차키스'
바깥에 있는 권위는 내 안의 입법자로부터 비준을 받아야 합니다. 비준을 받지 않은 채 무조건 따라서는 안 되죠.
제가 굴복하지 말고 저항하라고 한 대상은 충분히 힘이 센 사람들입니다. 나의 저항으로 상처받을 그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강하게 하셔도 됩니다. 우리가 걱정하고 약해져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사람들, 사회의 약자들, 그런 이들을 무서워하세요. 그 사람들은 무조건 존중하세요.
그리고 옳은게 이긴다는 걸 믿으세요. 옳은 말은 힘이 셉니다. 그러니까 내가 판단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계속 생각해보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윗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관철시켜 나가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젊음을 대하는 자세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봅니다.
마흔까지는 권위에 도전하고 정면교사, 반면교사 다 해보세요. 그리고 마흔이 되면 그때 태도를 바꾸십시오. 그떄는 말만이 아니라 진짜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때입니다. 나이 마흔에도 말만 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마흔에는 행동으로 옮겨 뒤따라오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세요. 내가 봤던 잘못된 것들을 과감히 개선하고, 그러면서 한편으로 도전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논쟁을 준비하세요. 그게 누구든, 문턱을 넘어선 것과 상관없이 정당하게 논쟁하고 인정하고, 존경하고 또 다시 저항하면서 사십시오. 존경은 아래로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잊지 맙시다. 우리는 약하기도 하고 강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맨 위에 이쓴ㄴ 사람도 저 아래 있는 사람도 똑같아요. 그러니 균형을 맞추기 위해 윗사람들에게 강하고 아랫사람들에게 약한,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수기의 느낀점>
읽으면서 가장 고개를 많이 끄덕였다. 구구절절 다 옳은 소리다. 나는 박웅현이 권위적이지 않아서 참 좋다. 인간대인간으로서 인격적으로 대한다는 느낌이 참 많이 든다. 어제 집에 가는 길에 팟빵에서 목소리를 한번 듣고 내가 생각한 이미지랑은 조금 다르구나 싶었다. 광고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답게 냉철함과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균형있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나 좋다.
나도 어느새 일을 한지 10년이다. 내가 일을 하면서 가장 회의가 드는 부분이 이 권위의식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 대부분 토를 달지 않는다. 그리고 묵묵히 한다. 불합리한 것을 불합리하다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 그리고 효율적인 업무처리, 사람에 대한 기본인식이 정립이 된다면 훨씬 쉽게 일을 잘 할 수 있을거 같은데 혼자는 참 외롭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본다. 그렇지만 박웅현의 글을 읽으며 또 한번 느낀다. 직장과 관련하여서는 내가 열심히 잘 하고 있다고...그래서 위로를 받는다.
다만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느끼는 부분이 가정에서의 힘듦이다. 가정속에서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게다가 가정에서의 편안함을 가장 원하는데 쉽게 되지 않다보니 직장도 힘들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있는 요즘이었다. 생강을 까는 일조차 열심히 하고 있는 박웅현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는 내가 못하는 일은 시작도 안 한다는 생각에 또 반성한다. 의식주와 같은 기본에 대해 어쩜 너무나 당연하다고 치부하며 무시해왔다. 직장에서의 유연근무 등으로 직장에서의 안정감을 위해 무언가를 시도하는 한해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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