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주에는 슬찬이를 데리고 성당에 갔다가 미사에 전혀 집중을 하지 못하고 왔다. 종교가 일상적이고 당연한 사람들에게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그 미사시간 또한 당연하고 자연스럽겠지만 나에게는 집중해서 참여하고 싶은 시간 중 하나인만큼 특별한 일이라 당분간은 슬찬이와 함께 가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어제 간만에 또 다시 미사를 본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는 조금 의연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왜 그리도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세상사에 무심했던만큼 기계처럼 살아온 시간에 대한 후회와 함께 내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성당에 가면 그렇게도 눈물이 난다. 어제는 마침 주님의 죽음을 묵상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강박이 있던 나에게는 또 특별한 경험이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없이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분의 죽음에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다. 강문식 미카엘 신부님께서 강론을 하시면서 본인이 대학교 4학년때 묵상했던 경험을 말씀해주셨다. 예수님이 아니라 어머니를 그자리에 놓고 생각을 하니 그 억울함에 분노가 치솟고 슬픔이 생기고 예수님이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럽고 외로웠을까를 느끼며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는 말씀이었다. 내가 다시 성당에 열심히 나가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강문식 미카엘 신부님 때문이다. 나에게는 이런 사람이 필요했다. 정말 순수하고 티없이 맑아보이는 사람, 흔들림 없이 본인의 믿음을 지켜나가는 사람이 절실했다. 내가 그렇게 살고 싶은데 흔들리는 나 자신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 너무 욕심내지 않고 살아도 충분히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필요했다. 강문식 미카엘 신부님이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여담으로 남편이 성당에 다시 나가고 지지난 주 나는 슬찬이와 미사를 보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본인은 혼자 가서 신부님을 보고 내가 했던 말을 알아채고 왔다. 남편이 얄미웠다. 그래서 그날 싸웠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이렇게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어제의 복음 중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이다. 인간들이 느끼는 고통을 그대로 느끼시고 결국 유혹에 빠진 제자의 배신에 노예의 몸값으로 팔려 죽음을 맞이하신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후에 후회한다. 이게 우리 인간들의 모습일 것이다. 물론 후회없는 삶이란 없다. 그런데 어떤 후회를 하며 살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이다. 유혹에 빠지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모습이기에 예수님의 고통도 당연하다고 하면 안 된다. 조금은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당에 가면 그렇게 살고자 마음 먹는 사람들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성당에 나가는 것이 좋다.
어느 순간 신이 있다는 것은 인지하게 되었다. 신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이 있다는 것까지는 왔지만 어떤 종교를 선택하고 어떤 방식으로 믿음을 행하는지는 본인의 선택이라고 늘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좋아서 성당에 다니면서도 자신 또한 진짜 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번씩 한다.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종교를 가져보는 것도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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