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팟빵에서 작가 김영하가 책을 읽어주는 방송에서 밀란쿤데라, 책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란 말은 처음 들었고 김영하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나 나른해서 졸린다는 생각을 하며 흘려들었다. 그래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박웅현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 책 정말 어렵겠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굳이 읽고 싶지는 않다. 박웅현이 마지막에도 표현했 듯, 테레사와 토마스의 사랑이야기만 기억해도 좋을 책이라는 말대로 그 부분만 기억할 듯 싶다.
대신 박웅현의 요약 속에서 나는 늘 그렇듯 등장인물들을 보며 나와 닮은 점을 찾아낸다. 나는 테레사를 꿈꾸는 사비나인 듯 하다. 사랑을 위해서 온몸 바치고는 싶다는 꿈을 꾸지만 그러기엔 상처받는 것이 너무 두렵고 용기가 부족하다. 사비나가 테레사의 아들로부터 편지를 받고 그들이 진짜 사랑을 했다는 것을 알고 부러워한다. 본인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사랑인데...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것 뿐인데.
그리고 이 소설 속 계속 나오는 감정은 연민이다. 영화평론가 이동진도 연민을 최고의 감정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상담할 때 상담사도 그랬다. 그리고 요즘 내가 사람을 바라볼 때 약간은 연민의 시선을 던질 때가 있다. 아무 감정없는 순수한 눈빛만을 꿈꿨는데 요즘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나서부턴 그렇다. 그러고 나니 나이가 드신 어르신들과 대화를 할때는 참 잘 통하나 젊은 사람들에게는 간혹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게 문제다.
그리고 '키치'...박웅현은 편집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본인이 만드는 광고 그리고 우리의 삶 또한 키치라고 말한다. 나는 정말 키치적 인간이다. 보기 싫은 것은 보지 않고 기억조차 못하며 보고 싶은 것만 보며 하고 싶은 것만 하며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블로그를 하고 내가 깨달은 것이 20살때까지의 내 인생을 아예 잊고 살았다는 것이다. 나는 테레사처럼 현실을 피하고 싶었다. 상스러운 말과 행동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와 책을 좋아했다. 그리고 남편을 만났을 때 내가 가장 끌렸던 것이 사진을 전공했다는 것과 그리스인조르바를 나보다 훨씬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이어서였다. 여전히 남편에게서 그 모습을 요구하다보니 남편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진짜 인생이 뭔지는...그리고 정답도 없다. 다만 나는 내가 보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모습대로 살고 싶다. 이 블로그처럼...
<박웅현의 글>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니체의 영원회귀라는 명제가 여러 철학자를 괴롭힌 이유는, 반대로 얘기하면 영원히 회귀되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할 수 없는 한 번뿐인 우리의 삶이 어떻게 의미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죠. 그저 주장할 뿐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역사라는 책의 앞 페이지를 읽으면서 이미 책의 끝부분까지 다 읽은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사실 모르는 건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영원히 회귀되지 않는 일회적인 것들은 무게를 가질 수 없어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 미래니까요. 지금 하는 우리의 모든 행동에는 무게를 실을 수 없어요. 검증되지 않은 일들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로 보면 우리의 지금, 이 존재함은 운명적으로 가벼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었던 것이죠. 소설은 첫 구절부터 영원회귀라는 철학적 테마를 던져놓고 사랑과 역사와 정치가 뒤섞인 인간들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지금 '여기'에서 '저기'로>
테레사는 육체의 세계에서 영혼의 세계로 나옵니다. 경박한 엄마, 일하고 있는 레스토랑의 천박한 손님들이 살고 있는 육체의 세계가 테레사가 지금 있는 곳입니다. 테레사는 그런 육체뿐인 삶이 싫고 그 세계로부터 도망쳐나오고 싶어요. 나만의 온전한 세계, '나'라는 하나의 영혼을 가지고 싶어합니다. 그녀에게 육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몸은 영혼을 담아두는 그릇과 같은 것일 뿐이에요. 육체 안에 있는 영혼을 누군가가 정중히 불러주었으면 좋겠는데 주위 사람들은 모두 함부로 문을 열죠. 그래서 테레사의 영혼은 늘 췌장 깊숙이 숨어 있습니다. 마치 잠수함 속 승무원처럼. 잠수함이 바닷속 깊이 들어가 있을 때 문을 갑자기 '열면' 승무원은 죽을 거예요. 그것처럼 아무나 함부로 문을 여는데 그때 영혼이 빠져나가면 죽어버리는 거죠. 그래서 췌장 깊숙이 숨는 거예요. 그런데 잠수함이 언젠가는 물 위로 올라오잖아요. 문을 열고 나가도 안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말입니다. 테레사는 그 세계로 가고 싶은 겁니다. 영혼이 나가도 죽지 않을 수 있는 세계로 말이죠.
토마스는 가벼운 세계에서 무거운 세계로 이동합니다. 토마스는 사랑이랄 게 없는, 모든 여자가 다 아름다웠던, 가벼운 세계에 살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테레사를 만나고 그에게 연민을 품게 되면서 지고지순한 사랑이라는 무거운 세계로 갑니다. 동시에 의무의 세계에서 자기 감정에 충실한 세계와 마주하게 됩니다.
"임무라니, 테레사. 그건 다 헛소리야. 내게 임무란 없어.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
사비나는 키치의 세계에서 비키치의 세계로 갔다가 다시 키치의 세계로 돌아와 결국 그 세계에서 마감하죠. 보이는 것,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편협한 시선. 사비나는 그 세계를 너무 싫어해요. 하지만 어느 순간 키치의 세계를 그리워하게 되는데, 테레사와 토마스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였어요.
'앞은 파악할 수 있는 거짓이고, 뒤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였지요.'
사비나가 봤던 토마스는 돈 후안이었어요. 그렇지만 테레사와 살아온 토마스, 그녀 곁에서 죽은 토마스를 보고, 틈 사이로 보인 진짜 모습, 지고지순한 비극적 사랑의 상징인 트리스탄으로 죽었다고 말합니다. 사비나에게 그건 키치의 세계예요. 보고 싶고 믿고 싶은 모습이니까요. 그러면서 그 키치의 세계를 그리워하죠.
프란츠는 안정의 세계에서 혁명의 세계로 움직여요. 역사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사회에서 집안 대대로 먹고사는 걱정 없는 가문의 자식이에요. 게다가 다행히 공부를 잘해서 이십 대에 교수가 됐어요. 물론 군대 같은 곳은 다녀오지 않았죠. 이런 프란츠에게 일상은 늘 한결같습니다. 이렇게 한결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혁명, 피, 열정과 변화 같은 것들을 동경하게 됩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수레바퀴가 내가 되고, 삶의 규모가 '은'과 '는'이 아닌, 변화와 죽음으로 움직이는 것을 꿈꿔요. 그래서 그는 체코의 프라하를 동경했어요. 소련군의 침공을 받고 레지스탕스들이 지하운동을 하고 투쟁을 하는 세계를 경외했죠. 그리고 그때 그 세계에 사는 사비나를 만납니다. 그에게 사비나는 강림한 여신과 같았어요.
<그래야만 한다, 그리고 키치>
베토벤이 남긴 마지막 현악 4중주의 악보에는 '그래야만 하는가? 꼭 그래야만 한다'라는 자필 메모가 적혀 있다고 하죠. 그러나 이 '그래야만 한다'는 베토벤에게 돈을 빌린 사람이 정말 갚아야 하는지 묻자 '갚아야 한다고'고 한데서 나왔다고 해요. 이처럼 베토벤의 예술, 역사라는 거대 담론, 프란츠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전부 키치로 연결이 됩니다. '파쇼와 싸운 지도자의 아들, 포로수용소에서 사망' '유럽의 지식인 캄보디아에서 민주화 투쟁 중 사망' '베토벤, 음악으로 인류에게 그래야만 한다는 메시지 전달'로 말이죠.
<연민으로 가득 찬 토마스의 사랑>
평소의 토마스였다면 테레사라는 존재는 그에게 그 트렁크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존재예요. 부담스럽죠. 그런데 연민으로 그녀를 받아들여요. 그녀는 토마스에게 '내가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되는 불쌍한 여자'가 된 거죠.
'메타포란 위험한 어떤 것임을 몰랐다. 메타포를 가지고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메타포가 하나만 있어도 생겨날 수 있다.'
동정심보다 무거운 건 없으니까요.
연민으로 사랑을 시작해 한없이 작아진 남자. 밀란 쿤데라는 이 사랑이야말로 진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연민, 즉 동정심은 타인의 불행을 겪을 뿐 아니라 환희, 고통,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감정이입이 가능하다는 점에 가장 최상의 감정이라는 겁니다.
<영혼을 꿈꾸는 테레사의 사랑>
똥은 키치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가 돼요. 키치의 세계는 똥을 인정하지 않죠. 그 세계는 보고 싶은 것들만 보는 세계예요. 테레사가 사는 세계, 어머니와 살고 있는 그 세계는 키치와 정반대의 세계인 거죠.
한번은 테레사가 바람을 피우는데요, 그건 누군가를 사랑해서가 아니에요. 테레사는 토마스에게 영혼으로 사랑받길 원하는데, 그가 그렇게 안 해주거든요.
따뜻한 목소리는 영혼을 불러내주고 저 아래 떨어져 있는 육체를 올려주는 것이거든요. 그 인양에 대해서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자유로운 영혼, 사비나의 사랑>
모든 체제를 싫어하는 사람이죠. 사비나는 [광장]의 이명준과 비슷합니다. 내 개별적인 객체성을 인정해주면 좋겠는데 어디에서도 인정을 안 해줘요.
사비나는 육체 이외의 영혼이 끼어드는 사랑을 좋아하지 않아요. 지지부진하게 엮이는 것 없이 산뜻한, 그래서 더 발전시키지 않아도 되는 그런 관계. 그녀는 정조보다 배신이라는 단어에 유혹당하는 사람인 거죠.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배반 뒤에 새로운 배반의 모험이 있다고 생각해, 부모, 남편, 사랑, 조국까지 배반한 그녀지만 그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배반만 한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사비나는 토마스의 솔직함을 좋아했어요. 키치적이지 않은 솔직함. 사비나가 있던 세계는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매우 키치적인 세계였는데 화가인 사비나 또한 그림 때문에 그 키치의 세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사비나는 키치의 세계를 거부하며 그런 사랑을 보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키치를 동경하면서 프란츠를 그리워해요. 사비나는 프란츠와 함께 있고 싶어지면서 자신이 참을성이 없었던 것을 후회합니다. 삶의 무거움을 인정하죠.
<삶의 드라마를 꿈꾼 프란츠의 사랑>
'그들은 그들이 서로에게 했던 단어의 논리적 의미는 정확하게 이해했으나 이 단어 사이를 흘러가는 의미론적 강물의 속삭임은 듣지 못했던 것이다.'
우선 프란츠는 이과계열의 사람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숫자, 기계, 치밀함, 정확성이 전부인 세계에서 살죠. 그래서 이 사람은 정신이 흩어지고 혼미해질 정도로 도취되는 세계를 추구했는데 그게 바로 음악입니다. 논리의 세계에서 감상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이 음악인 것이죠.
'그에게 있어서 음악은 해방을 뜻했다: 음악은 그를 고독과 유폐, 도서관의 먼지로부터 해방시키며 육체의 문을 열어 그를 통해 영혼이 빠져나와 타인과 교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는 불현듯 자신이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 사비나의 육체적 존재가 그가 믿었던 것보다는 훨씬 덜 중요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그의 삶에 각인해놓았던 황금빛 흔적, 마술의 흔적이었다.(...)그의 자유와 새로운 삶이 부여한 이 예기치 못한 행복, 이 편안함, 이 희열, 그것은 그녀가 그에게 남겨준 선물이었다.
<똥을 인정하지 않는 키치의 세계>
보이는 거짓과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은 이 책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키치'라는 단어와 맞물려 있어요. 저는 키치는 편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대로 잘라서 편집하는 게 바로 키치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의 삶 또한 편집이에요. 편집이 없을 수 없죠.
'똥이 부정되고, 각자가 마치 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신하는 세계를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이 키치라고 불린다.'
'그녀는 일생 동안 자신의 적은 키치라고 단언했었다. 그러나 그녀 자신조차도 자신의 존재 깊숙한 곳에 키치를 품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텔레비전의 멜로드라마 속에서 배은망덕한 딸이 버림받은 아버지를 품 안에 껴안는 모습이나 행복한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의 창문이 황혼 속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면, 그녀는 두 눈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진정한 행복과 영원회귀>
'카레닌에게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은 순수한 행복이었다. 그는 천진난만하게 아직도 이세상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진심으로 이에 즐거워했다.'
'천국의 삶은 우리를 미지로 끌고 가는 직선 경주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그것은 모험이 아닌 셈이다.'
영원회귀, 반복되는 단조로움과 권태가 있어야 다음을 기대하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죠.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왠지 어렵고 부담스러웠다면 단 한 가지, 토마스와 테레사의 사랑만 기억해도 좋을 책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랑 이야기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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