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부지런하다. 오늘도 새벽미사를 다녀왔다. 이유는 남편이 낚시를 갈수도 있기에 하루종일 언제오나 언제가나 고민하기 싫어서 그냥 새벽미사를 선택했다. 우리 남편의 경우 3년간 내 눈에는 참 게을러보였다. 그래서 참 부러웠고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지고 저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불평불만을 하는 것을 보고 참 신기했다. 그리고 짜증이 났다. 그런데 낚시라는 취미를 하는 것을 보고 참 신기했다. 한번 따라갔을 때 보니 나에게는 중노동이었다. 내가 절대 좋아할 수 없는 취미였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가 볼때는 일상에서 공허함이 큰 사람이 아닐까 싶다. 뭔가 노동을 하고 고기를 낚는 성취감이 필요한데 일상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일이 없기 때문에 낚시라는 취미에 빠지지 않는가 싶다. 만고 내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티비를 보면서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허지웅, 서장훈, 안정환 모두 참 부지런하다. 뭔가 계속 움직인다. 이런 사람들은 강박을 가지고 있다. 불안의 해소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들이 늘어나다보니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안의 원인은 내가 느끼는 바로는 사람들의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고 싶은 자신의 마음 또는 안정적이지 못했던 가정환경 속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했다는 압박감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 편해보이는 사람들이 참 부럽고 따르고 싶어서 평생을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참 쉽지 않았다. 사람의 성격이나 생활방식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도 아니고 편하게 그저 쉬고 자고 싶을 뿐인데 끊임없는 생각들이 방해를 했었다. 요즘 마음이 편해지고 나서 참 신기한 것이 잠이 잘 온다. 봄이어서 그럴수도 있지만 업무시간중에도 점심 먹고 졸리고 집에서도 밤9시면 졸린다. 그리고 아침에도 4시40분이면 빠딱빠딱 일어났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못한다. 그래서 그럴땐 그냥 쉰다.
오늘도 성당에 갔다가 미사시작 전 주보를 보면서 '오늘은 별 내용이 없군' 하며 오늘은 어떤 글을 쓸까 잡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도 역시 강문식 미카엘 신부님의 강론에 눈물이 났다. 그리고 내 자신을 또 돌이켜볼 수 있었다. 오늘의 복음은 요한복음 9장 1절부터 41절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고쳐주시는 내용이다. 이미 아는 내용이라 별 생각없이 그냥 복음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강론이 시작되었다.
'우리 모두 눈을 감으시고 이 눈먼자가 되어봅시다. 태어날때부터 아무것도 볼 수 없었어요. 자동차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등등 모든게 거슬렸죠. 그런데 어느날 누군가 다가와 눈을 뜨게 해주겠다며 눈에 진흙을 바르고 우물가로 가서 씻으라고 해요. 눈먼사람을 데려다주시는 게 아니고 직접 가서 씻으라고 하는거죠. 순간 짜증이 났지만 심장이 이상해요. 혹시 진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심장이 쿵쾅쿵쾅 대고 희망이 싹트죠. 그렇게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서 우물가로 가요. 우물가에서도 씻을지 말지 고민을 해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거슬린다는 표현에서부터 울기 시작했다. 세상에 대해서 거슬리는 게 많다는 것은 잘 살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 것이라고 본다. 나는 평생을 거슬리는 것을 차단하며 살았다. 그런 것에 에너지를 쏟는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빨리 성취해버리거나 아예 포기해버리거나 그것을 할지말지 고민하는데 시간을 최소화했고 마음에 담아두는 것을 안 하려고 노력해왔다.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복음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었는가 믿지못했는가보다 실천했는가 하지 않았는가가 아닌가 싶다. 믿었든 믿지 못했든 실천을 했기에 그 눈먼장인은 눈을 뜰 수 있었다. 본인이 해낸 것이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주는 능력은 신밖에 가지고 있지 않겠지만 우리가 꿈꾸는 대부분의 것들이 어쩌면 허망하고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마음먹고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 과정 속에서 툴툴대고 힘들다보니 '나에게 힘을 주세요'하고 외치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나도 힘든데 '힘을 주세요'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 힘이 들어서 상대에게 위로를 해주기보다 '그것같고 그러냐'는 식으로 반응할 때가 많다. 정말 다들 힘들어서 그런거다. 그렇게 이해하고 살아야 한다.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알랭드보통의 '불안'을 읽으면서 정말 공감한 부분이 '우리가 불안을 느낄 때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나보다 나은 것을 가졌을때'라는 것이다. 나는 워낙 포기와 자기합리화가 빠른 사람이라 웬만한 것에 욕심을 내지 않고 살아왔었다. 그렇게 편안한 삶만을 추구하다 슬찬이를 낳고서야 내가 그런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슬찬이가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그냥 괜찮은 척 멋있는척하며 공허하게 내 삶을 살아갔을 거다. 그래서 슬찬이가 나에게는 행복이다. 슬찬이를 통해서 이제서야 내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구나를 알고 느끼는 중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만이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그러나 마음만 가지고는 이루기는 힘들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마음을 먹었다면 실천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면 지금 내가 꿈꾸고 있는 삶을 10년 뒤 누리고 있을 것이다. 희망을 잃지 말고 지금부터 다시 꿈을 꾸면 좋겠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나는 지금 남편과 슬찬이에게 핫케이크믹스로 주고 아침으로 먹을 핫케이크 만들라고 시키고 글을 쓰고 있다. 이제 10분 남았다. 10분 후부터는 슬찬이와 함께 하루를 빈둥댈 예정이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며 사는 하루를 보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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