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여전히 명확하진 않다. 명확할 게 알 수 없다는 거 정도는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래도 고민의 고민 끝에 나의 한계에 대해서는 좀 알게 되었다. 나는 정말 고고하게 잘 살고 싶었다. 고고해보이는 학처럼 물밑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발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저 고고한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고고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내 멋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적 결함으로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알랑방구 끼는 것은 전혀 못하고 동조는 못 할지언정 반대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다 그것마저 보기 싫어 피해버리는 사람이다보니 내 주위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정말 성격 좋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지랄맞은 성격을 어떻게 보고 있을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미사를 갔는데 지금 좀 살만하다 싶으니 미사에 집중을 못했다. 그리고 또 알았다. 나는 정말 무엇하나 진정으로 열심히 해본 게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움직인걸까...남들이 보면 참 열심히 산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나 스스로도 그건 열심히라기 보다 불안해서 움직이는거에요라고 하지만 정말 가만히 있질 못한다는 걸 알았다. 생각이 끊임없이 나타나서 움직였다. 그때 강문식 미카엘신부님께서 오늘 강론은 다른 이야기보다 미사에 올때 행동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처음 성전에 들어와서 성수를 찍고 성호경을 그을때부터 영성체때까지는 감실을 보고 인사를 하고 영성체를 받을때 아멘으로 대답하고 두발짝 떨어져 영성체를 받아모시고 그다음부터는 내안에 주님이 계시기에 인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예비자교리때 배운 기본적인 절차와 태도였다. 내가 다시 성당에 나오고 그 분의 삶이 궁금해졌고 이제 신을 믿는다고 했지만 형식과 절차, 교회법 등등 뭔가 요구하는게 많다보니 성당 자체에 대해서는 그닥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나 이조차도 열심히 진짜 깊숙이 가본적 없으면서 미리 판단하고 정해버리는 버릇이 그대로 드러났다.
금요일 아침에 슬찬이가 아침부터 울어서 남편은 화가 나서 아이한테도 화를 내고 나에게 카톡이 했다. 지금 어땠다 휴직을 알아봐라. 그 글을 읽는 순간 슬찬이가 걱정이 됐고 남편에겐 화가 났다. 어떻게 저렇게 쉽게 말할 수 있지하는 생각이 들며 남편의 상대의 입장에선 생각하지 않고 질러보고 마는 그 성격에 대해 분개했다. 그리고 하루종일 화가 났었다. 어제까지 화가 안 풀렸었는데 일직을 같이한 분께서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시고 하루종일 아이 키우며 직장여성으로 살아가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나랑 남편이랑 정말 많이 닮았다는 것을 또 한번 느꼈다. 둘이 너무 닮아서 이렇게 평행선을 긋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오히려 나보다 남편이 훨씬 잘 살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정말 남의식이라는 걸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내 눈에 그게 매력이었다. 내가 끊임없이 노력해서 얻은 것을 그냥 가지고 있는것만 같았다. 그래서 참 많이도 부러웠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조금이라도 귀찮은 것은 다 몫 같은 발언이 마구 쏟아졌다. 나도 내 한몸 편히 살기 위해 구축해놓은 나혼자만의 세상이 무너졌다. 그리고 나도 똑같이 남편탓을 하고 남편을 비난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오히려 더 불편하고 내가 가진 나의 모습 중 가장 싫어하는 면이 되었다. 그래서 또 괴로웠었다.
어제 내가 출근한 동안 남편이 슬찬이를 데리고 친구와 친구아들과 함께 안성의 미리내성지에 다녀왔다는 것을 저녁에 듣고 화가 풀렸다. 내가 남편을 게으르고 거칠다고 단정짓고 있다보니 슬찬이를 맡기는 것이 불안하고 싫었던 것인데 남편도 남편 나름 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남편은 낚시를 가고 나는 슬찬이와 아침은 팬케이크믹스로 해먹고 오후엔 궁중떡볶이 만들어먹고 나도 귀찮지만 집에만 있으면 심심할까 싶어 산책 갈까 했더니 슬찬이가 자기는 유모차 타고 산책을 가겠단다. 그 모습을 보면서 너도 정말 우리 아들 맞구나 하고 느낀다. 남편이나 나나 수준이 딱 슬찬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보내는 하루 이게 사는거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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