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있는 언니가 이 책을 추천해서 선택했다. 24년간 광고를 만든 박웅현에게 사람들은 창의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책인 듯 하다. 처음 1강을 읽으며 이 책이 왜 이렇게 뜬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내 기준에 재미가 없었다. 그냥 딴 책 읽을까 하면서 계속 읽는데 뭔가 곱씹게 된다. 그리고 박웅현이 바라는대로 소개하는 좋은 책들이 읽고 싶어진다. 좋은 책을 소개하고 자신이 책을 보는 방법을 공유하면서 일상 속에서 더 많이 보고 느끼게 하고 싶은 저자의 마음이 보여 참 좋은 책인 거 같다.
김훈작가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 '내안의 숲'이었나 사놓고 읽다가 재미없어서 덮었다. 나는 편하게 쉽게 읽히는 책이 좋은데 박웅현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왜 김훈의 문체가 어려워했는지 알겠다. 나는 보고 싶은것만 보고 싶은 사람인데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너무나 잘 묘사해놓은 것이다. 그러니 읽을수록 머리든 마음이든 남아있는게 너무 많고 안 그래도 책읽는 속도가 느리고 참을성 없는 나에게는 진도가 나가지 않는 김훈의 문체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박웅현의 해설을 읽고 나니 김훈에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냉이국, 동백꽃, 시간 등등 나는 지금까지 세상을 시청하며 살아온 것 같다. 흘려보고 들은 것이다. 이제는 견문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1강을 읽고는 이철수의 판화집을 사서 읽어보고 싶어졌고 2강에서는 김훈의 자전거여행이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중간에 소개된 핑크마티니의 <초원의빛>은 내 맘에 쏙드는 곡이다. 한동안은 계속 듣고 싶을 것 같다.
1강. 시작은 울림이다.
이철수 [산벚나무, 꽃피었는데-이철수 신작 판화 100선전]
<땅콩> 땅콩을 거두었다 / 덜 익은 놈일수록 줄기를 놓지 않는다 / 덜된 놈! 덜떨어진 놈!
<이쁘기만 한데...> 논에서 잡초를 뽑는다 /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 벼와 한 논에 살게 된 것을 이유로 / '잡'이라 부르기 미안하다
우리는 0세에서 100세를 놓고 봤을 때,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가면서 지식이 계속 쌓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지식을 얻는 대신 가능성을 내주는 것이죠.
창의성과 아이디어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일상'입니다. 일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대처 능력이 커지는 것이죠.
답은 일상 속에 있습니다. 나한테 모든 것들이 말을 걸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 들을 마음이 없죠. 그런데 들을 마음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입니다.
'직업'의 범주를 벗어나 '삶'의 맥락에서 볼때, 저의 대답은 창의적이 되면 삶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행복은 순간에 있습니다. 순간순간 행복을 찾아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행복은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그러나 풍요롭기 위해서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 얼마만큼 감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풍요와 빈곤이 나뉩니다. 그러니까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지요.
시일불견 청이불문 : 시청은 흘려 보고 듣는 것이고 견문은 깊이 보고 듣는 거죠.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지식이 많은 친구들보다, 감동을 잘 받는 친구들이 일을 더 잘합니다. 감동을 잘 받는다는 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입니다.
2강. 김훈의 힘, 들여다보기
김훈의 강연을 듣거나, 동영상으로 보시면 아실 테지만 이분의 특징은 구어가 곧 문어라는 겁니다. 말로 나오는 문장을 그냥 받아적으면 글로 쓸 수 있는 정도입니다. 인터뷰 내용을 글로 옮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습관 때문이겠지요. 또하나 김훈의 특징은 사실적인 글쓰기를 한다는 겁니다.
'겨울에는 봄의 길들을 떠올릴 수 없었고, 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저는 주중과 주말의 생활이 완전히 다릅니다. 주중에는 계속해서 회의가 잡혀 있어서 문자 한 통 주고받을 여유가 없습니다. 반면 주말에는 나무늘보처럼 집에서 잠만 자고 음악만 듣는 생활을 합니다. 회사 동료들이 보기에는 일만 하는 인간이고, 집사람이 보기에는 한심한 인간일 겁니다.
경동교회는 계단이 낮습니다. 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야트막한 층계를 따라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그러면서 마음이 정리가 됩니다. 영주의 부석사는 반대로 계단이 높습니다. 무릎을 한껏 굽히고 올라가야 해요. 앞을 볼 여유가 없죠. 계단을 잘 봐야 걸을 수 있도록 좀 높게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렇게 아래를 보고 걷다보면 어느 순간 짠 하고 웅장한 대웅전이 나타납니다. 계단의 높이는 다르지만 한 곳은 속도를 늦추고 한 곳은 시선을 돌려놓는 것으로 잠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핑크마티니 <초원의 빛>
책이나 그림, 음악 등의 인문적인 요소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촉수를 만들어줍니다.
'대나무의 삶은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이다.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뚜꺼워지지도 않고, 다만 단단해진다. 대나무는 그 인고의 세월을 기록하지 않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나이테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겁니다. 왜냐하면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보지 못하는 이유는 늘 보아서입니다. 결핍의 결핍, 너무 낯이 익어서 볼 수 없는 겁니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다. 익숙한 것 속에 정말 좋은 것들이 주변에 있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데 듣지 못한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걸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때문에 나에 대한 파악을 하기 전에 내가 갈 곳만 보려고 하죠. 혹시 그래서 실수하지 않을까 나를 먼저 분석하려고 합니다.
김훈을 통해서 혹은 삶의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어 새로운 것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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