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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블로그시작한지1년

[어쩌다어른]혜민스님

지난 연말에 청소하면서 재방송을 얼핏 봤었다. 그리고 옥수수에 뜨기를 기다리다가 한동안 잊고있었다. 요즘 슬찬이가 일찍 자주면서 나에게도 조금 여유가 찾아와서 다시 생각이 났다. 그래서 오늘 출근길에 봤다. 정말 편하게 말씀 참 잘 하셔서 보는 동안 집중을 했는데 정리를 하려고 하니 막상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집중하고 봤나보다.

[혜민스님의 이야기]

저는 학창시절 '나는 왜 태어났을까?' '삶의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태어나보니 상영중인 '나'라는 영화 속에 던져진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나는 왜 태어났으며 내가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 궁금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수없이 질문했죠. 그런데 다들 관심 없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이상한 건가?'란 생각을 하며 자랐는데 대학에서 종교학을 만나고 내가 궁금하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관심을 가지고 오랜시간 종교학을 공부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하버드대학교 재학 시절 출가를 결심했어요. 그렇게 구도의 길을 걸으며 얻은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해요.

변한다면 진정한 내가 아니다!

살면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이 있죠. 그 감정과 나를 동일시 하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화난다.' '내가 슬프다.' '내가 기쁘다.' 이렇게요. 그런데 감정이 '나'라면 감정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져야 해요. 슬픈 감정이 사라질 때 슬픔과 함께 나도 사라져야 하는데 '나'도 함께 사라지나요? '나'는 남아있나요?' '나'라는 존재가 남아 슬픔이 지나갔음을 인지하죠. 감정은 '임시적인 나'일 뿐인거죠.

생각 또한 마찬가지에요. 우리는 수많은 생각을 하며 살죠. 그렇다면 '생각'이라는 건 무잇일까? '생각'은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1. 생각할때는 현재가 사라진다. 여러분 현재를 생각할 수 있어요? 생각은 과거 혹은 미래죠. 현재는 생각할 수 없어요. 생각하는 순간 현재가 다 날아가 버립니다. 친구 만났을 때 생각을 많이 하면 친구는 까맣게 잊게 되고 밥 먹을 때 생각 많이 하면 음식 맛을 잘 모르듯 말이죠. 생각하는 동안 현재를 느끼지 못하는거에요.

2. 생각할때는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생각할 때 생각에 빠져 있어요? 생각하는 걸 알아요? 생각했음을 알아차리는 건 생각이 멈춰야 비로소 가능해요. 생각은 몽유병과 같아요. 셀 수 없이 많은 생각을 하지만 생각 중임을 인지하지 못하는거죠.

3. 생각의 생성과 소멸을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 생각하지 말자고 해도 계속 생각나죠. 컨트롤이 안 되는데 내 것일까? 그런데 우리는 생각이 곧 '나'라고 인지해요. 내 생각과 다를 경우 남과 다투기도 하구요.

4. 생각은 다른 사람의 말이나 글 등 외부자극에 의해 일어난다. 대부분의 생각은 외부에서 들여온 내용에서 비롯되요. 그런데 마치 절로 생겨난 것처럼 느끼죠.

5. 생각은 어떤 상황을 규정시킨다. 생각의 프레임이라고 하죠. 생각을 규정시켰을 경우 새로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까요? 보통 과거 생각에 얽매여 현재를 경험하죠.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어요. 새로운 상황에도 기존 생각을 고수하죠. 결국 있는 그대로를 경험하지 못하는거죠.

6. 생각을 통해서 세상을 보면 이미 다 안다고 착각한다. 아이가 단어 공부할 때 '새'라는 단어를 알기 전에는 끊임없이 대상을 관찰하죠. 단어를 알고 난 후에는 언어를 아는 것 뿐인데 본질을 다 안다고 착각해요. '나', '마음'이란 단어만 알 뿐 진짜 '나'와 '마음'은 모르죠.

7. 생각을 통해 세상을 보면 대상이 세상과 분리되어 있다고 착각한다. 포도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열매만 생각하죠. 그런데 포도나무, 줄기, 땅, 자연환경, 농부의 노고까지 이 모든 것이 합쳐진 결과물이에요. 하지만 전체를 보지 못한 채 포도만 따로 존재한다고 착각하죠. 이름을 부른 순간 배경이 사라져버린거에요. '혜민스님'이라고 말하는 순간 스님과 연결된 환경은 분리해요. 강연중인 저는 녹화장, 여러분 모든것이 통으로 연결되어 있는데요. 생각이 연결된 세상을 끊어서 인식하게 하는거죠. 생각을 통해 세상을 보면 일체가 따로 분리되어 보인다는 것이죠. 그 무엇도 혼자 존재할 수 없어요. 무엇이든 서로 연결된 환경이 존재해요. 지구는 태양계에 속해 있고 태양도 우주 속에 있죠. 넓게 보면 포도를 받쳐주고 있는 우주가 있는거죠. 포도의 존재를 위해!!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가요? 우리 역시 연결된 모든 것이 우리 삶을 지탱해주고 있어요. 생각을 통해 보면 연결된 것은 사라지고 '나'라는 존재가 독립된 것처럼 느껴져요.

8. 생각이 많으면 머리가 아프다. 생각이 많은게 좋은게 아니에요. 생각 많은 밤, 잠이 잘 오나요? 불안해서 자다가도 벌떡 깨곤하죠. 생각이 많다는 건 건강하지 않다는 거에요. 하버드대학교에서 생각을 멈추고 쉰 사람과 좋은 생각을 많이 한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할까에 대해 실험을 했어요. 생각을 쉰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생각을 안 한 것만 못하다는거죠. 우리가 불안하고 힘든 이유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해서죠. 생각을 생각으로 막아야해요. '생각아, 생각아, 그 일이 일어나면 생각하자~'

요즘 사이다 같다는 말씀 많이 하시죠. 저는 '사이다 같다'는 '이해했다'는 것 같아요. 이해는 생각이 사라진 후에 가능하죠. 우리는 침묵을 만났을 때 온전한 나를 되찾아요. 마음이 고요해서 본성과 마주할 때 이해할 수 있어요. 무언가를 사랑하고 무언가와 하나가 되는 느낌도 본질과 만났을 때 가능한거죠. 사람들이 수많은 생각에 빠져서 생각에 갇혀 세상을 보니 모든 것이 분리되었다고 생각하는거에요. 그러한 생각을 '나'라고 착각하죠. 요즘 힘들어하는 아내가 있어요. 아내를 다 안다고 생각하는 남편, 더는 아내가 궁금하지 않아요. 아내의 힘듦에 대해 무관심하죠. 그러나 아내는 끊임없이 변화중이에요. 변화하는 것도 다 안다고 생각하니 소통이 불가한거죠. 더 알 것도, 물어볼 것도 없는 존재일 뿐이에요. 이미 가진 생각만으로 대상을 보는 건 우리의 자유를 빼앗는 일이에요. 있는 그대로를 경험하고 선택할 수 없게 만드는 거죠.

9. 생각을 알아차리면 생각에서 자유로워진다.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간단해요. 생각을 부정하려고 하지 말고 생각이 일어난 것을 알아차려라!! 알아차리는 순간 생각에서 탈피해요.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네~' 알아차린다는 건 어떤 형태일까요? 침묵의 모습으로 존재해요. 생각으로부터의 진정한 자유는 '침묵'이에요.

'진정한 나'는 무엇일까? 관찰되지 않아야 진정한 '나'에요. 관찰 가능한 대상은 내가 아닌 남이에요. 영어로 '나'는 주체인 subject라고 하고 '남'은 객체인 object라고 하죠. 객체인 '남'은 관찰 가능해요. 우리 몸은 관찰 가능해요. 라면 먹고 퉁퉁 부은 내얼굴, 내가 관찰 할 수 있는 '대상'이죠. '감정'도 관찰할 수 있죠. 화남, 기쁨, 슬픔 등 감정도 관찰을 통해 알수 있죠. 생각은 또 어떤가요? 좋은생각, 나쁜생각, 이런생각, 저런생각 등 내 생각을 관찰하는 무언가...대상이 수시로 바뀌어도 관찰되지 않는 내 안의 무언가...과연 무엇인 걸까요? 영혼...영혼은 어떤 모양일까요. 단어로 안다는 착각을 하죠.

제가 오랜 시간 종교학을 공부하며 '기독교'에 관심이 많아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란 표현을 쓰죠. 이때 하나님은 외면만 아실까요? 내면도 아실까요? 내 몸 안팎의 일을 다 알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내 안에도 계실까요? 하나님은 초월적인 존재죠. 생각과 감정을 아는 내 안에 있는 어떤 존재, '침묵'의 모습으로 계세요. '고요'의 모습으로 계세요. 생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졌을 때 무엇이 남아있나요? 특별한 모양은 없지만 내 생각을 알고 있는 것, 바로, 살아있는 침묵!!이에요. 고요, 침묵은 삶의 배경으로 존재해요. 항상 존재하죠. 살아있는 침묵이 내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죠. 지켜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죠. 앎은 진정한 나에요. 앎의 대상을 나라고 착각을 하죠. 생각과 감정을 '나'라고 동일시 하죠. 보이기 때문에...삶 속에서 항상 침묵이 바라보고 있어요.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내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죠. 침묵과 고요의 상태로...이것이 진정한 나!에요.

앎은 진정한 나다

Q.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봐야 하는 이유는?

싫은 사람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에요. 상식적으로 이해 불가하고 심지어 나를 갈구는 이들도 있죠. 세가지 해결책이 있어요.

1. 상대방과의 관계를 끊어라. 회사를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배우자가 미치도록 밉지만 이혼할수도 없고 현실에서 하기 힘든 일이죠.

2.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라. 보통 배우자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많이 하죠. 금연, 금주부터 생활습관까지 노력의 결과는 안 바뀌어요. 게다가 상대를 변화시키는 건 장기전이고 남을 바꾸고자 하면 할수록 힘든 건 내마음이죠. KTX를 타고 지방을 가는데 갓난아기와 함께 탄 엄마가 있었는데 이때 아기가 울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짜증나고 스트레스 받았죠. 그저 아기 엄마가 야속할 뿐이죠. '나'는 아기 울음을 그치게 하고 싶지만 아기는 계속 울어요. 이럴때

3. 내 마음을 바꿔라. 아기엄마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언니와 조카라고 생각했을 때 짜증보다 걱정이 앞서죠. 생각을 바꾸면 내 마음이 편해지죠. 왜 내 마음이 편해질까요? 상대의 처지가 이해되기 때문이죠. 제가 공항에 갔다가 강아지가 있어 쓰다듬어주려 강아지 곁으로 갔더니 막 짖는거에요. 그래서 돌아서려 했는데 덫에 걸려있는거에요. 개가 나 때문에 짖은 게 아니라 아파서 짖은거죠. 살다 보면 만나는 멍멍 짖는 사람들이 많죠. '아~쥐덫에 물려서 그랬구나'하고 이해하면 내 마음이 편해져요. 행복 바이러스도 전염되듯 불행바이러스도 마찬가지에요.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는 것이 내 마음의 평화를 찾는 길이에요.

Q. 남에게 내 감정을 숨겨야 할까? 표현해야 할까?

어리거나 유명할수록 더 고민을 많이하죠. 사춘기 때 한창 외모에 신경 쓸 나이구요. '세상 사람들은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나한테 관심이 없어요.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힘이 해답이에요. '내가 이 나이 들어서 남들 눈치 보고 살아야 해? 남들은 날 신경 쓰지 않아~' 남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마세요~

Q.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는 방법은?

저도 원래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대학원때 조별학습을 하는데 내가 솔선수범하면 조원들도 따라 하겠지란 마음으로 제일 처음 어려운 과제를 했어요. 다음번에도 어려운 일은 여전히 내 담당이었어요. 흔한 조별 학습의 폐해죠. 그래서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선배가 '나에게 먼저 착한 사람이 되세요~'라고 하더라구요. 힘들어도 내가 먼저 나서서 하면 내 기대에 부응해줄 거라고 생각하며 정작 내가 나에게 불친절한거죠. 남에게 좀 더 솔직해지는 것, 거절할 줄 아는 것도 필요해요.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법이에요. 내가 희생해서 완전히 소진된 후에는 남을 진정 사랑할 수 없어요.

Q. 남들과의 비교하게 될 때?

모든 불행의 원인은 비교에요. 내가 잃는 것만 비교하는 경향이 있어요. 당연히 얻은 것도 있어요. 잃은 것에 치우쳐 얻은 것은 잊어버리죠. 얻은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내 삶을 수용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Q. 나의 길을 찾는 방법은?

본인의 꿈을 모르기가 부지기수죠. 아이들은 감정과 표현에 솔직하죠. 그런데 부모의 잣대가 발동하죠. '그렇게 하면 안 돼' 끊임없이 지적받다 보면 나와 부모님이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를 경우 어느새 부모님 뜻에 순응하게 되요. 부모님이 유독 엄할수록 감정억제가 익숙해지죠. '자기소외'라고 해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지?' 꾸준히 갈고닦았으면 좋으련만 오랜 시간 놓아버린 나의 꿈, 꿈을 소중히 여기자. 힘들면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내 말에 경청해주고 나의 뜻을 지지해주고 나를 믿어주는 내 편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어떨까요? 미처 몰랐던 낯선 나를 발견할 수 있을거에요. 주위의 지인이 힘들다면 전문 상담가의 조언도 추천해요. 상담비용이 좀 들지만...새로운 나를 발견할 기회에요.

Q. 사춘기 아들과 갈등중?

스님에게 육아상담을 참 많이 하는데....사춘기는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에요. 지극히 정상이죠. 뒤늦은 사춘기가 더 문제에요. 사춘기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과정이니 아들과 단절돼도 걱정하지 마세요. 내 아이를 위해 믿고 지켜봐 주세요. "엄마와 아빠는 언제나 너를 믿는다. 우리는 항상 네 편이야. 늘 사랑해, 아들" 아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바로, 믿음이에요~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엄마가 이미 행복한 것입니다. 사춘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부모님의 행복이죠. 엄마가 아이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가정불화로 인한 애정 쏠림 현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엄한 부모에게서 자란 경우 억제와 자기소외가 습관화되었죠. 결국 주변 사람들까지 통제하려는 것이에요. 자기 삶을 살면 돼요. 내 삶은 나의 것이에요. 자녀에게 강요하지 않기!!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면 그림을 춤추기를 좋아했다면 춤을 하세요. 내가 아닌 남만 억제한다면 모두가 불행해요.

Q.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데 점점 엄마와 비슷해져요.

엄마를 용서하세요. 나를 위해서!! 엄마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엄마의 삶이 어땠는지 알고 있나요? 엄마에 대해 잘 모른다면 이해가 힘든게 당연해요. 내가 싫어하는 엄마의 모습 대부분 조부모에게서 대물림되요. 살아보지 않았기에 부모 세대의 삶을 잘 알지 못하죠. 우리는 단편적인 모습으로만 판단해요. 깊이 이해해보면 용서할 수 있어요.

<수기의 느낀점>

이 방송을 보면서 나는 나의 사춘기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한참 혜민스님과 같은 고민을 했었다. 지금이 현재가 아니라 30년뒤쯤 내가 회상하고 있는거는 아닐까...이상의 '거울'에 빠져서 한참을 거울을 바라보며 거울속의 세상이 진짜고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세계가 가짜는 아닐까...뭐 이런 잡다한 생각을 참 많이도 했던 시기다. 나에겐 특별히 사춘기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고교시절이 사춘기였던 듯 하다.

내가 한참 힘들었을 때 혜민스님의 '완벽하지 않은 것에 대한 사랑'에서 나자신에게 친절하라는 일화를 읽으며 공감을 하고 위로를 받았다. 보통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과 달리 혜민스님은 너무나 부드럽고 온화하고 안정되어 보이는 면이 내가 가질 수 없는 면이다보니 처음부터 '나는 혜민스님을 좋아할 수 없어'라고 단정짓고 있었다. 그래서 관심을 끄고 스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현실속에서 만나면 참 부러워하면서도 쉽게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다. 나의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닮고 싶지만 그러기엔 나는 욕심이 너무 많다. 이 욕심을 버리고 싶으면서도 버리기엔 아쉽다는 생각이 늘 있기에 나는 종종 후회하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요즘 느낀다. 나는 결코 착하거나 친절한 성격도 아니다. 슬찬이 핑계를 대며 나에게는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다며 나의 시간이나 에너지를 빼앗는 모든 것에 짜증을 내고 불친절하다. 슬찬이 또한 내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보기 좋게 키우고 싶어한다. 모든 것이 내 기준에 즐겁고 보기 좋아야 내 마음이 편하다보니 늘 주변에 신경을 너무 많이 썼다. 그렇게 절대 안 되는 것은 관계를 끊고 내 주변에서 없애버리고 내가 보기 좋은 것들로만 가득 채워놓은 것이다. 그렇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슬찬이가 나의 바닥을 드러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참 생각이 많았다.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 

슬찬이가 5살이 되고 YMCA에 들어갔다. 그리고 고맙게도 잘 적응해주고 있다. 이제 정말 마음이 놓인다고 할까. 이제 정말 슬찬이를 내 아이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사람들이 보통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느끼고 알게 되는 것을 나는 참 어렵게도 돌아왔다. 그러나 이게 나다. 당장 무언가를 해결하고 싶은 인내심이 부족한 이 성격탓에 앞으로도 괴로운 일은 많겠지만 최근 4년만큼 불안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