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책꽂이에 있는 책들은 대부분 6~7년전쯤 관심있어서 보던 책들이다. 책꽂이를 쭈욱 훓어보며 느낀 건 나는 역시 취향이 분명하다.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작가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궁금한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가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인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다가도 재미없을때 중간에 덮어버리거나 읽고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참 많다. 이 책 또한 그랬다. 그냥 빨리 편하게 읽혔던 책이지만 재미없다로 기억하고 있었다.
9편의 단편 속에 각각 참 괜찮은 듯 괜찮지 않은 여자들이 나온다. 8살 연하의 남자친구의 졸업축하 겸 이별여행을 떠난 여자,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기까지 하여 그닥 행복하지 않아 보인 여자, 늘 싫어하던 스타일인 매끈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가 별볼일 없어보이는 여자에게 뒷통수 당하며 뺏기게 되는 딱부러져보였던 여자, 유부남과 그의 딸을 사랑하는 대인기피증을 가지고 있는 여자, 일을 사랑하는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하는 또다른 멋진 여자, 불타는 연애 후 차였다가 각자 결혼 후 재회하게 되어 남자의 관계를 거절하는 여자, 대학시절부터 늘 함께 있었던 것 같은 남자와 여자, 서로를 너무나 부러워했던 두 여자. 내 기준엔 참 평범하지 않은 여자들이다. 내 주변에는 참 평범한 여자들이 많다. 한남자를 만나 그 가정에 만족하며 자식들 잘 키우며 열심히들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말이다. 그 평범이라는 것이 나에겐 참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임경선의 세계에선 저 여자들이 평범한 모습일 것 같다. 저 여자들은 하나같이 일에서는 꽤 멋지고 당당하다. 그런데 남자들과 연애에 있어서는 뭔가 모자라보인다.
나는 어쩜 저 여자들을 꿈꿨다. 그러나 내가 저 여자들을 모자라게 보듯 내가 모자라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연애나 사랑에 있어서는 계산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을 하고 싶지만 상처받는 것이 싫다보니 사랑에 있어서는 늘 용기가 부족했다. 어쩜 사랑 뿐만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모든 면에서 그랬던 것 같다. 내 자신이 너무나 소중해서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쉬운 길로 내가 정한 한계까지만 도전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다. 늘 무언가에 푹 빠져서 바쁜것 같았지만 온전히 나를 내던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보니 한번씩 공허함이 찾아왔다. 이런 삶의 태도에 대해 한동안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나 평생 이렇게 살아왔기에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푹 빠져서 오랫동안 꾸준히 성실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 행동해보는 일이 나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요즘이다.
<작가의 말-사랑스런 그녀들을 만나러 가다>
어느 날 "소설에 도전해볼까 한다"고 말했다. KBS 2FM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방송에서였다. 디제이 유희열 씨가 새해 계획을 물어봤는데 엉겁결에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그 앞에서 조금 멋져 보이고 싶었나 보다. 우발적으로 내뱉은 그 말 때문에 나는 머리를 쥐어뜯고 사실 한동안 꽤 후회도 했었다. 나, 대체, 왜?
그런데 다행히 그녈들이 나를 끌어당겼다. 감정에 솔직한 것이 늘 독이 되는 이 모호한 시대에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를 질끈 묶고 일상을 시작하는 그녀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다. 그녀들은 냉소적이면서 뜨거웠고 소심하면서 음흉했다. 죽도록 지기 싫어하면서도 때로는 더할 나위 없이 무기력했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확실한 사랑의 감촉을 열망했다.
그녀들은 사랑 앞에서 드라마틱했다. 그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라고 하면서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욕망과 체념 사이에서, 타인의 시선과 자신의 진심 사이에서 흔들렸다. 뜨거운 마음이 차가운 머리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불안해했고 그것이 드러날까 시니컬하게 자기변호를 했다.
어렵사리 사랑을 시작해놓고는 머지않아 다가올지도 모를 이별을 예감하면서 스스로 알아서 건조해지고 서늘해져갔다. 그렇지만 애써 숨기려 해도 사랑 앞에선 뼛속 깊이 약해지고 낭만적으로 바뀌었다. 이런 그녀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들은 물었다. 사랑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우리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냐고. 해답을 알면서 묻는 그녀들에게 나는 아무런 대답을 줄 수가 없었다. 나의 우발적인 충동에 대한 답을 찾아내기 위해 내가 스스로 용기를 내 소설을 쓰기로 한 것처럼, 그녀들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스스로 행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을 뿐이다.
설렘과 열정이 머물다 지나가고 이별이 찾아오기까지 그 묵직한 시간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더 혹은 덜 사랑한 자의 무모함, 잔인함, 치사함, 처연함, 비루함 같은 것들을 온몸으로 겪어내야만 한다고.
이 소설은 사랑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다. 그것은 불완전해서 더 아름다운 나와 그녀들과 당신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더불어 우리 사랑스런 남자들도 함께 조금씩 철이 들겠지.
2011년 5월 첫 소설을 사랑하는 딸, 앞으로 우리처럼 사랑한 윤서에게 선물한다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나는 임경선의 책을 좀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30대 초반까지 나는 사랑으로 인한 상처가 너무 무서워서 이 책 또한 회피했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 여자들이 사랑스럽다는 그 말을 조금은 이해하겠다. 그리고 마지막 말처럼 우리 슬찬이가 조금은 철이 들어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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