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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블로그시작한지1년

[책]임경선의 '태도에 관하여'

원래 심리나 상담을 워낙 좋아해서 예전부터 라디오에서 상담해주는 것을 즐겨들었었고 꽤 좋아했었다. 나에게 임경선은 명쾌하고 깔끔하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그게 외국에서 오래 생활을 해서라고 생각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참 사랑받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지만 그런 태도로 살아갈 수 없는 환경에서 잘 자라고 제몫하면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게 익힌 기본 태도가 어느정도 나랑 닮은 점이 참 많다였다.

임경선의 삶이 좀더 궁금해졌다. 라디오를 들을때 집에서 일을 하는데 도우미를 고용을 해서 아이를 돌보게 하고 자신의 작업시간과 공간을 유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도 나는 참 이상적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면서 살다보니 더욱 궁금하다. 아이에게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잘 지킬 수 있는지. 그리고 아이도 그렇게 잘 자라고 있는지.

말하는대로에서 임경선은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학생때 연애만큼 순수하게 없단다'는 말을 했다. 그때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느껴졌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껴지는 바로는 어린시절 부모님께서 자신들의 일에 빠져 혼자 자란다고 느끼면서 혼자서 상처를 많이 받으며 자란 듯 하다. 그래도 꽤 많은 연애를 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아는 사람으로 잘 자랐단 느낌이 든다. 임경선이 말하는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인 태도에 대해 알아보자.

'태도'란 '어떻게'라는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의 문제로, 그 사람을 가장 그 사람답게 만드는 고유자산이다. 몇 살이 되었든, 지금 있는 자리에서 더 나아지려고 노력할 수 있었으면 한다. 노력이라는 행위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르겠지만 그 고통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간단히 결론 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서둘러 결론을 내려는 대신 그 문제에 대해 충분히 시간을 들여 생각해볼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지기를 바란다. 또한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잃는 것이 반드시 있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아량이 있었으면 좋겠다. - 2015년 초봄 임경선

1부 자발성 :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 '행동'을 하면서 '생각'이 따라서 정리되었다. 어쨌든 움직여보는 것의 중요함을 통감했다.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나를 '이렇다'라고 단정 짓는 것이다. 확고한 생각이나 단단한 가치관이 되어주는 것들은 내가 자발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통해서 체득된다. 생각이 행동을 유발하지만 사실상 행동이 생각을 예민하게 가다듬고 정리해준다.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을 때는 일단 그 상황에 나를 집어넣어보는 것이 좋다. 용기는 그래서 필요하다.

애초에 완벽한 선택, 완벽한 확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충족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정답 같은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숱하게 실패한 선택들이 공존했을 것이다. 실패를 통해 나에 대해 더 알게 되고 틈을 보완하며 계속 스스로에게 인생 결정권을 부여했을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실패하고 싶지 않으니까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 것이다.

대안의 인생, 그런 건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행여 있더라도 분명히 내가 선택하지 않은 '저쪽 인생의 나'도 똑같이 '이쪽 인생의 나'를 시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의미? 그런 건 원래 없다. 세상의 모든 의미는 내가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즐겁고 보람찬 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일의 재미는 스스로 찾아야 하는 주관적인 문제다. 일이 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탓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일의 가능성에 기회를 줄 생각을 해보면 안 되는 것일까.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를 위해서 말이다. 사람이 있는 곳은 어디에나 지옥도 있고 짠한 감동도 있다. 사람들끼리 미워하고 시기하며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딪히면서 자극받고 배우며 성장해나가기도 한다.

상처받지 않기를 원한다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사랑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말로는 연애하고 싶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철벽을 치며 상대를 밀어낸다. 어쨌든 자기 자신이 제일 소중해서 상처받는 게 두려우니까.

상대한테 무리하지 않는 만큼 나 자신한테도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를 사랑한다면 힘닿는 데까지 자유롭게 해줘야 할 것이다. 아무리 가까워도 인간으로서의 예의의 선을 넘지 않도록 한다.

2부 관대함 :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만큼 상대의 마음도 이해한다.'

사랑을 취해야 할 단 하나의 태도가 있다면 나 자신에게는 '진실함', 상대한테는 '관대함'인 것 같다. 사랑했던 상대에 관대하다는 것은 동시에 불완전한 나를 용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식은 부모라는 껍질을 깨고 나와야 어른이 된다. 성장은 나의 부모가 나처럼 한낱 불완전한 인간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상처를 소중히 하려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은 그 상처를 소중히 하지 않으면 그 외에 소중히 할 만한 게 별로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상 그쯤 되면 그건 부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인 것이다.

15년간의 결혼 생활을 통해 이 세상엔 내 남자, 내 여자란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고 체념했다. 사람을 소유할 수도 없고, 상대를 내 입맛대로 바꿀 수도 없고, 끊임없이 같은 깊이로 사랑할 수도 없다. 결혼이 인생에서 하나의 큰 획을 그어주면서 기분 전환이나 새로운 도전이 될 수는 있어도 행복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배우자 포함 그 어떤 가까운 인간관계도 나의 인생을, 나의 행복을, 내가 외롭지 않음을 보장해줄 수는 없다. 고독은 스스로 떠안고 처리해야만 할 것 같다. 오랜 시간을 같이했던 당신이 내 인생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흘러간다. 여자와 남자에게 얽힌 진정한 슬픔과 아름다움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그저 그렇게 한때 서로의 곁에 머물다 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토록 너그럽고 관대하게 서로를 지켜봐줄 수 있었나 보다.

가사 분담 문제가 어려운 이유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적으로 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마님의 분부만 기다리겠다는 머슴 같은 대사가 그다지 기쁘지가 않다. 그 말의 행간에 스스로가 가사일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음을 드러난다. 주도권이나 자발성, 책임을 갖지 않겠다는 얄미운 선언처럼도 들린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상상하는 만큼 깔끔하지도 않을뿐더러 은근히 더럽고 게으르지만 가사일에 대해서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 있음을 어느샌가 슬프게 체득하고 만 것이다.

내 마음이 불편하느니 차라리 몸이 힘들겠다라고 생각해서 그 순간을 참지 못하면 시간이 지나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가사 분담은 한 가정에 대해 부부로서 책임을 함께 지는 문제이자 가정 자체가 불행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에 내가 남편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가정은 남편과 나, 둘이 같이 구축한 세계다. 우리가 더럽힌 것, 먹는 것, 우리가 낳은 것, 모두 우리가 직접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효율적인 노동력을 빌리기보다 우리는 우리대로 효율성을 기해보기로 한다. 가사일을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물건은 그때그때 다 버린다. 청소하기 가장 편한 도구를 구비한다. 외식은 줄이되, 시간을 아끼기 위해 건강하게 만든 반찬들을 주문해서 먹는다. 매번 직접 차려 먹지 못한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사 먹더라도 건강식을 사 먹는다.

평등의 모습이 항상 5대5일 필요는 없다. 어떨 때는 1대9일 수도, 3대7일수도, 6대4일수도, 8대2일수도 있다. 서로의 노고를 고마워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걸로 경시하지 않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많은 것들은 사랑으로 함께해나갈 수 있다. 악처를 연기할 필요도, 현모양처로 무리할 필요도 없다. 인간적인 공정함과 낭만적인 관대함을 최선을 다해 양립해나가고 싶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더 나아질 것이다.

3부 정직함 : '그 누구보다도 나에게 솔직하고 싶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맨 먼저 할 일은 '나는 누구로부터 사랑받고 싶은가, 나는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를 가려내는 일인것 같다. 밀물과 썰물을 거쳐 여전히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그 사람들이야말로 지금의 '내 사람들'인 것이다.

혼자서 잘 서 있을 수 있어야 타인과 함께 있을 때도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마음이 통하지도 않는 누군가로 공허함을 가짜로 채우기보단 차라리 그 비어있는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것이 낫다.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인간관계를 제외하고는 부디 놔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면 돌파'는 쉽게 갈라서지 못하는 관계에 적용된다. 고통스럽지만 정면 돌파를 하고 결론이 어떻게 나든 모호한 부분은 분명히 하고 넘어간다. 아무리 노력해도 접점이 없으면 다른 대안인 피하기나 놔주기로 넘겨야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실패한다 해도 최선을 다해보지 않으면 미련이 남을 것 같아서.

'피하기'는 어떤 이유에서든 나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거나 나를 경계하거나 싫어하거나 근거 없이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는 등 굴절된 심리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내가 취하는 행동이다.

인간관계는 저마다의 생로병사 운명이 있어서 절친한 관계였다가 도중에 별다른 일이 없었음에도 자연 소멸하거나 서먹해질 수가 있다. 이때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고, 애매한 채로 놔둘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돈이 문제라면 그 돈, 내가 벌겠다는 생각은 할 수 없을까. 남자는 의존의 대상이 아니라 애초에 사랑의 대상이었다.

사람의 몸만큼 정직한 건 없고 사람의 마음만큼 조작 가능한 것도 없는 것 같다.

4부 성실함 : '누구나 원한다고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우리가 변해간다 해도 결코 변하지 않을 일에 대한 좋은 태도들을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싶다. '변화'라는 개념은 전혀 새롭거나 화려한 것이 아니다. '변화'는 '변하지 않는 것'에서 온다.

겸손한 주제 파악이 인간의 미덕일 순 있지만 삶을 팽팽하게 지탱시켜주진 않는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내가 나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입하는 기분은 내가 생생히 살아서 숨쉬고 있다는 실감을 안겨준다. 그렇게 조금씩 걸어나가는 일,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결국 열심히 한 것들만이 끝까지 남는다.

본게임에서 실패했다면 실력이든 노력이든 재능이든 부족한 부분을 키워야지 과정과 경험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실패를 직시하고 어설픈 위로나 정신 승리를 하지 않는 단단한 사람들이 좋다.

일등이나 최고가 되거나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포기하지 않을 거면 내가 나아지는 것, 그리고 나아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괜찮아"라고 대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사실 속으로는 하나도 괜찮지 않은 것이다.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은 회색 지대에 놓여 있다. 나만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기 전에 스스로 먼저 회의할 줄 아는 자세를 가지며 타인의 말을 경청해야 할 것 같다. 그런 후 생각의 중심이 세워져 치우치지 않고 무리짓지 않을 정도가 되면, 타인의 개인성과 존엄성도 나의 그것만큼 존중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5부 공정함 : '나와 너의 개인성을 인정한다.'

자존감이 소중한 것은, 나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쓸 때 우리는 타인을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상대의 결핍이나 불완전함을 이해할 포용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에 묶여 자신에게 가혹한 사람이나, 자신의 껍데기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서도 역시 가혹하거나 깎아내리려 할 뿐이다.

내가 중요하고 매력적이라 생각하고, 생각의 결이 같다고 느낀 사람이 나를 존중해주면 그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마음 속 깊이 믿는 그 한 사람의 격려와 존중과 인정이 있으면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를 인정해달라고 억지로 구걸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 어느 때라도 인간관계가 기쁘기 위한 기본은 '그 사람과 같이 있을 때의 내 모습을 내가 좋아하는가'이며, 연기는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내키는 만큼 감정과 헌신을 보여도 좋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진 않았으면 좋겠다. 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기쁨이 되어야지 그것이 '노력'이 되고 '무리'가 되면 나중에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

좋은 품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때문에 무리하는 사람보다 자기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조금만 촉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무리하는 게 다 보이고 그게 불편해서 먼저 멀어져가기도 한다. 나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상대도 나를 존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비교하기로 했다면 공정하게 해야 한다. 단순한 비교 자학이 아닌 엄정한 상황 분석 말이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의 표면적인 모습이 그 사람의 다가 아니고, 알고 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을 공정하게 인정해야 한다. 충분히 그 성취를 누릴 만큼 뒤에서 노력을 했을 것이다. 나의 가치관이나 시야로는 재단할 수 없는 뭔가가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비교를 통해 내가 변화하려면 질투가 나를 삼켜버리게 놔두기보다 '그렇다면 나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서 비교 자학 대신 나 개인의 목표를 보다 세심하게 구체화나가도록 한다. 그런 태도를 가지면 반짝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느덧 질투라는 감정 대신 자극을 받아 그들의 좋은 부분을 순수하게 닮고 싶어진다. 남에 대한 이야기를 할 시간과 기력으로 나의 일을 하기로 한다.

나의 싫고 못마땅한 점이 보여 미운 사람이 있다. 나와 비슷해서 싫은 동종 혐오 같은 것이다. 내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직면할 용기가 없어 피하고 있었는데 상대가 내 눈앞에 '너 아직 숙제 남았어'라고 들이대는 것만 같다. 이는 내가 극복하거나 풀고 나가야 하는 콤플렉스를 알게 해준다. 그다음으로는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진 사람에 대한 미움이다. 일견 질투인데 이건 상대가 아니라 '나'의 불안감이나 욕구불만이 문제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것은 나의 자격지심 문제임을 안다. 애증의 감정이 나의 태도를 모순되게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심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미움도 있다. 내가 상대에게 원하는 만큼의 관심을 돌려받지 못했을 때 무시받고 있다고 느끼는 속상함이다.

미묘하게 누군가가 거슬리기 시작할 때. 그 일이 자꾸 생각나서 전전긍긍하게 될 때. 그 생각에 사로잡혀 스트레스 받는 나 자신에게 더 화가날 때. 스스로에게 묻도록 한다. 이 복잡한 미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하고. 내가 어느 순간 타인에 대한 비난으로 열을 올린다면 나는 그것을 내 안의 공허함이나 불안함에 시선을 돌리라는 자가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든 크고 작은 저항에는 힘겨움이 따른다. 감정 노동의 힘겨움, 스트레스나 번거로움, 구설수, 시간 낭비, 수치심, 그리고 보복의 두려움도 가지게 된다.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고 저항하는 일은 아주 작아보이는 문제라도 불안하고 외롭고 두려운 일이다. 작은 것은 흘려보내고 큰 것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도 챙겨야 나중에 큰 것도 챙길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잘못된 관행에 감각적으로 경종이 울리면 어떻게든 바로잡고 넘어가고 싶다. 그런 예민함이라면 대환영이다.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는 게 고마운 만큼 상대가 그 부탁을 흔쾌히 '거절'할 수 있게도 해줘야 한다. 못해서든, 하기 싫어서든, 거절하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거절 이유다. 부탁이라는 것은, 그 사람 아니면 도저히 해결 방법이 없을 때, 아무런 다른 대안이 없을 때, 부탁한 데에 대한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를 각오와 부담감을 가질 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도와주고' 싶지,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 제 타이밍에 거절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결과를 낳는다. 아니다 싶으면 서로 확실히 NO를 말하고 오로지 내가 기꺼이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YES를 하는 것. 어른으로서 꼮 갖추고 싶은 습성이다.

임경선X김현철 대담 : 어떤 태도를 가질 때 내가 가장 충만한가

경선 : 김현철 선생님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지막지한 성실함입니다. 아침 6시부터 직원 없이 혼자 병원에 나와서 진료를 하는 거요. 헌신적이면서도 무리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자발성과 성실함이 같이 있는 선생님의 그런 부분이 저는 너무 좋아요. 피곤한데 피곤함을 넘어서는 충족감이 있는 건가요?

현철 : 치료할 때에도 나른한 거냐? 피곤한 거냐? 우울증 때문에 피곤한 거나? 아니면 정말 열심히 뛰고 바빠서 나른한 거냐? 다 다르거든요. 근데 그 차이는 기분에서 나오죠. 누가 시킨다고 하겠어요? 이거를. 못하죠.

경선 :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느낌이잖아요. 삶에 기분 좋은 긴장감이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철 : 의사로서요. 언제 누가 죽을지 몰라요. 결국은 돈이나 그런거에 구애받지 않고,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만족하고, 현재의 내 정신세계가 있으면, 나의 정신이 도덕관을 떠나서도 만족할 수 있는 상태가 되죠.

경선 : 비관을 깔고 있지만 그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편이죠.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고, 일관되게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거기에 우리는 마땅히 헌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저는 그것이 인생의 공허함을 최소화시킬 유일한 방법이라고 봐요.

현철 : 제가 늘 체념을 주장하는데요, 내가 세상에 비굴해지면 세상이 원 없이 나를 잡아먹을 것이다. 제임스 딘이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라고 말하는데 그 말에 동의해요. 저 역시도 지금 여분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경선 : 저는 아직도 사랑을 낭만과 슬픔으로 보나 봐요. 더불어 일은 성실하게, 인간관계는 자기 마음에 정직하게, 세상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힘든 사회 속 개인으로서의 '나'는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고, 내가 해볼 수 있는 방법으로 좌충우돌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철 : 노력이라는 행위 속의 정서적인 충만함을 도외시하고 무시하면 위험하죠.

현철 : 저는 직업을 발톱에 낀 때만도 못하게 여기거든요. 직업을 꿈과 동일시하는 거 웃겨요. 꿈이 직업도 아니고, 직업이 나의 목표도 아니고. 사람의 목표란 건 있을 수 없는 건데요. 그래서 제가 '찰나를 살아라'라는 말을 자주 쓰나 봐요. 그런 표면적인 꿈이나 목표가 아닌, 어떤 태도를 가질 때 내가 가장 충만한가를 고민해보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 고민이 없으니 결정 장애를 겪고 항간의 보편성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거죠. 보편성이 되게 위험한 것이, 틀에서 벗어나는 거에 대한 두려움을 줘요.

경선 : 제가 어떤 인물이 매력적이라고 느껴질 때를 보면, 그 사람의 태도가 좋아서 그런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서 무라카미 하루키나 우디 앨런 같은 경우에도요. 그분들의 작품도 좋지만, 그 사람 자체도 못지않게 좋은 거예요. 일단 그분들의 권위적이지 않은 태도, 성실하게 꾸준히 일하는 작업 방식이 좋죠. 소탈한 옷차림도 좋고요. 나는 나대로 좋아하는 걸 표현한다. 세속적인 성공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엄숙하게 굴 필요도 없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자연스러운 삶의 태도가 좋더라구요. 평범함의 특별함, 일상성의 위대함 같달까. 자유의 영역을 더 넓혀주는 것 같아요.

현철 : 단추라는 개념이 항상 첫걸음인 거예요. 만약에 다음에 안 된다 그러면 다른 단추를, 다른 첫 단추를 끼우면 되거든요.

경선 : 10주년 계획 저는 그거 믿지 않거든요. 미리 계획한다고 더 성실하다거나 더 잘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현재, 바로 오늘과 그 한해에 대해서만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수기의 느낀점>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생각을 그대로 펼쳐놓은 것 같은 글이 참 많았다. 차이점은 나는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라 영화나 책을 통해 익힌 태도를 임경선은 외교관인 아버지와 함께 여러나라에서 자라면서 직접적으로 체득했다는 점에서 나보다 훨씬 더 강하고 단단하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김어준 라디오에서 게스트로 나와서 알고 있던 김현철선생님과 대담을 읽으면 두 사람다 죽음에 대한 강박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현철선생님은 의사로서 많은 죽음을 보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더욱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한 듯 하다. 그리고 임경선은 갑상선암이 4번이나 재발하면서 5번의 수술을 거치는 동안 매번 그때가 마지막일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이후의 삶은 정말 덤이라고 생각하며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듯 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말 '이래서 뭐가 바뀌겠어'하는 생각이 드는 세상이 맞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냥 포기하고 나 하나 편하게 살다 죽을래라고 살아가기엔 나는 슬찬이가 참 눈에 밟힌다. 그래서 내가 슬찬이를 위해서 뭐라도 해줘야할 것 같았다. 그러나 첫 해외여행을 실패하고 깨달은 것이 남편이나 슬찬이를 내 욕심에 강제적으로 끌어들이면 안 된다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찾아서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슬찬이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저 내가 꿋꿋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성실히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만이 내가 슬찬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인 듯 한다. 그리고 슬찬이도 스스로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태도를 익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