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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블로그시작한지1년

[말하는대로]웹툰작가 이종범의 '슬럼프'

지난 첫 출연때 "너무 힘들면 잠시 도망가"라는 말로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예전에 더지니어스에서 얼핏 보고는 약간 재수없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원래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기억에서 삭제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보니 그때 방송을 안 본건지 대충 본건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본인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웹툰 작가 이종범이라고 소개한다.  대표작은 <닥터프로스트>가 있다. 웹툰작가 이전에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내가 관심을 가질만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일 듯 하다. 오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종범의 버스킹>

연말이 되면 듣게 되는 단어 '슬럼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거에요. 살다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슬럼프', 제 개인적인 생각은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슬럼프를 겪는다'고 말하면 안 되고 "슬럼프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슬럼프'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첫번째는 지쳐있고 에너지가 다 떨어진 상태 요즘 유행하는 번아웃 증훈군(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상태를 말하죠. 이때는 지친거죠 쉬면 된다고 생각해요. "쉴 수 없는 상태니까 그러지"라고들 많이 말하는데 두번째 슬럼프의 의미에 대해 얘기하면 "그래 나는 쉬면 되는거구나"라고 동의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슬럼프'란 "이걸 지금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잃어버렸을 때인 것 같아요. '일의 의미'를 잃어버린 순간 찾아오는 슬럼프 말이죠. 우리들은 많은 종류의 질문을 던지며 사는데 누구나 반드시 하는 질문은 대부분 무엇에 해당하는 질문이에요. '무엇'을 '어떻게'할지에 대한 거죠. 그러나 대부분 자연스럽게 지나치게 되는 질문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가'입니다.

'왜'라는 질문은 오래 걸리죠 답을 얻기가 힘듭니다. 보통 '왜'는 반드시 그 다음 '왜'를 가져오게 돼요. 그래서 아마 모든 사람들은 '내가 지금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해 적당히 넘어가버린 것 같기도 해요. '왜'를 통해 깨닫게 되는 이유, 그러나 쉽게 발견하기 힘든 진정한 '이유', 저는 문제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을 하는 이유가 그일의 유통기한을 정해주기 때문에요.

여기 계신 모든 분들도 분명히 슬럼프 속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어요. 6년, 3년, 3년 총 12년의 시간 동안 '내가 이 공부를 왜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공부를 하신 분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대학에 가는 것이 목표였던 학생은 대학에 붙는 순간 공부하는 이유가 끝납니다. 공부의 유통기한이 사라지는 거죠.

"넌 만화를 왜 그리니?" 거의 반사적으로 답이 나와요. 재밌으니까, 즐거우니까 또는 '주변 친구들이 좋아해주는 거 같아서'...'재미'가 이유인 사람은 처음으로 마감을 하게 되면 좋아하지 않게 됩니다. 재미가 없어집니다. 끝나버린 '재미'의 유통기한이죠. 그리고 '주변반응'이 이유인 사람은 처음으로 악플을 받았을 때 모든 사람에게 만화로 사랑 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 사람의 유통기한이 사라졌어요. 재미있게도 '좋아서, 재미있어서' 한다던 동료보다 '돈'이 이유인 만화가는 훨씬 더 차분하고 끈기있고 길게 만화를 그릴 수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은 돈 때문에 하기 때문에 악플이 달려도 흔들리지 않고요. 굳건한 이유가 되어준 원고료인 거죠. 하지만 그 사람의 유통기한도 언젠가 끝나겠죠.

가장 어려운 질문 "나는 왜?" 끝이 없는 순환이에요.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왜"를 던지지 않는다는 거고요. 또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는 거예요.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을까?" 답을 찾기까지 7년이 걸렸어요. 저 같은 경우는 내가 만화를 왜 그리는지 질문했을 때 그러나 어렵게 찾아낸 그 '이유'는 굉장히 손때가 묻어서 반질반질 하지만 힘든 순간을 이겨내게 해주는 '이유'가 되요. 스스로에게 던진 "왜"라는 이유의 횟수는 몇 번째 태클에 넘어질 지 결정해주는 유통기한의 기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웹툰 작가 이종범

"왜"라는 질문을 외면한 채 살아간다 한들 과연 자기자신을 속이고 있는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은 나중에 변하게 될 이유를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하는 분들도 계시죠. 저는 그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말 높은 산에 올라갈 때는 중간에 베이스 캠프라는 걸 만들어요. 정상에 가기 위한 재정비의 과정이죠. 그런 사람한테 "너 아직 '산꼭대기'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왜 베이스 캠프를 치고 그래?"라곤 하지 않습니다.

<미생>적가 윤태호 왈 "작가에게 슬럼프를 해결하는 방법 따윈 없습니다. 그냥 계속 할 뿐이죠" 이 말이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느껴요.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그 일을 계속 해보는 것이 빠른 방법이에요. 이유도 모른 채 '할 수 없이 한다' 그래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면 거기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전혀 죄책감을 가질 일이 아니에요. 그것은 모든 인간의 본능 "왜"라는 질문이 무섭다는 건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본능입니다.

"슬럼프가 왔다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이유의 "유통기한이 다 됐구나"하고 느끼고 그저 지치고 힘든 시기가 아닌 또다시 한걸음을 나아갈 수 있는 계기로 생각하면 됩니다. "이 일을 왜 하고 있는 걸까" 즉 슬럼프가 온다면 그게 굉장히 중요한 표지판이라고 생각하세요. 지금까지 여러분이 허리춤에 달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그 이유의 유통기한이 다 됐다는 표시말이죠.

'슬럼프'에 빠졌다는 것, 지금까지의 이유를 재발견 하거나 그 다음 단계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일을 하고 있는 진정한 '이유' 생각해볼만한 '슬럼프'가 갖는 진정한 의미죠.

또다시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는 계기 '슬럼프'

7년에 걸쳐 깨달은 내가 웹툰 작가여야 하는 '이유' 기본적으로 인간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특히 나이를 먹을 수록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운좋게 보게 된 한 사람의 변화인데 변화의 이유는 좋은 작품에 감동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7년 만에 찾은 이유는 내 만화를 보기 전과 후, 한 사람의 삶이 행복하게 변했으면 이것이 웹툰 작가로 살아가는 '단단한 이유'가 되었어요.

하고 있는 일에 확신이 없을 때 택했던 방법은 세 가지 밖에 없었어요. 1. 일단 해보는 것 2. 해본 걸 끝내는 것 3. 끝낸 것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에요.

눈앞에 놓인 꿈과 현실의 기로, 저는 '잠정적 결론'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나를 속이기 위해 당장 만든 이유가 나중에 변화할 거란 것만 알고 있다면 지금은 면피용이라 할지라도 일단은 그 이유를 동력 삼아서 다음 모퉁이까지 갈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지금 힘든 이유는 단 하나의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앞으로 내가 새로운 이유를 발견할지언정 현재 나를 속이기 위해 임시 이유를 만든다고 해서 그 이유가 그렇게 의미 없는 걸까요? 스스로가 만든 '값진 이유' 그리고 살아갈 많은 나날들, 또다른 사람을 만나보고 못 가본 곳에 가게 될 거에요. 매번 거쳐야 할 새로운 경험 그리고 매순간 변하게 될 살아감의 이유를 발견하게 될거에요.

<수기의 느낀점>

점심시간에 오랜만에 다시보기로 봤다. 블로그에 빠지고 난 후 그동안 계속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펼쳐놓았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했고 정말 사는 것 같았다.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은 많지만 스스로도 정리가 되지 않다보니 쓸수가 없어 우선 덮어놓고 기존에 좋아했던 것들부터 하나씩 다시 펼쳐놓고 있다. 그러다보니 티비 볼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머리를 쓰는 것은 몸을 쓰는 것보다 훨씬 피곤한 일이다. 이건 이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요즘 정말 강하게 느끼고 있다. 9시만 되면 뻗어버리니까.

이 방송을 보고 <닥터 프로스트>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종범이란 사람이 궁금해진 것이다. 내가 요즘 블로그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외로워서이다. 나는 정말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어린시절 우리가 보고 배운 것들은 책속의 이야기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세상에서 살아가다보니 책처럼 사는 일이 그리 녹녹치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세상의 기준에 맞춰간다. 그대로 책속처럼 살아가려다보니 오히려 내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내가 내 기준에 맞춰 열심히 잘 살아가는 것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하고 다른 내가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내가 이상한가 하고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이 많아지면서 힘들어진다.

내가 블로그를 하고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쓰면서 나자신에 대해서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정말 다시 사는 것 같다고 많이 느낀다. 그리고 지금껏 내 인생 1라운드를 잘 살아온 나에게 정말 고마웠다. 내가 좋아했던 방송, 책들 속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위로를 참 많이 받는다. 어디선가 혼자 힘들어하고 있는 한사람이 내 글을 읽고 조금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내가 블로그를 하는 진짜 이유이다. 그래서 구글은 돈 되는 정보만 중시해서 문제야 라고 혼자 구글 욕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글로 쓸 수 있는 것이다. 블로그가 나를 위로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계속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