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방송을 제대로는 못 봤다. 어떤 사건들을 맡으셨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에 대한 분위기만 알았고 그때 한참 즐겨보던 최지우가 나왔던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 나온 사건과 비슷하다고만 생각했다.
처음 나오셨을때 너무 어색하게 해서 유희열이 좀 편하게 하시라고 화를 냈다고 한다. 유희열보다 동생임에도 자신이 많이 무모(無毛)해져서 좀 나이가 들어보인다는 것을 인정하시고 지난 방송 이후 본인의 존재감을 규정 짓는다는 건 굉장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과 함께 뉴스룸에 언젠가는 나올건데 지금 뉴스룸 시청률이 너무 올라서 그전에 스케치북에 먼저 나가시겠단다. 역시 내 코드다. 나는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당당한 이런 사람들이 너무 좋다.
즉석에서 노래 부탁드렸는데 버스킹 준비보다 노래준비를 더 많이 하셨다는 변호사님 꽤 잘 하신다. http://tv.naver.com/v/1322939
나도 음치클리닉에 한번 가봐야겠다.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음 좀더 행복할 거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늘의 주제는 반성하지 않는 공권력이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꼭 필요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사형선고 후 31년간 복역한 흑인 글렌포드와 그를 찾아간 스트라우드검사에 관해 방송에 나왔다. 그 흑인을 찾아간 검사는 바로 처음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였다. 31년이 지나 진범이 밝혀졌고 31년의 옥살이로 글렌포드는 폐암말기 상태로 석방이 되었다. 스트라우드 검사는 글렌포드를 찾아가 용서를 구했지만 글렌포드는 "내 인생 31년이 희생됐습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8개월밖에 못 산다고 합니다. 당신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당신을 용서 못합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2015년 6월 29일 석방된지 1년5개월 만에 사망했다. 빼앗긴 인생을 생각하면 용서 못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스트라우드 검사는 이 사건을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큰 오점이라고 말하며 지역신문에도 자신의 반성을 담아서 기고도 했다. "나로 인한 글레포드의 비참에 대해서 그와 그의 가족에게 사죄한다." 잘못된 결론을 안긴 피해자의 유족에게도 오판을 하게 한 재판부에게까지 사죄했다.
오판을 인정하고 사과와 반성을 한 검사 때문에 미국의 사법에 대한 신뢰와 정의가 떨어졌을까? 오히려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하는 용기에 자신들의 사법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1999년 2월 6일 삼례 나라슈퍼에 침입한 3인조 강도가 있었다. 잠을 자던 부부를 협박해 금품을 갈취했고 옆방에 있던 할머니의 입을 청테이프로 막았다. 그 후 갑자기 할머니께서 의식을 잃으셨고 3명의 강도 중 한명이 인공호흡을 시도했다. 그러나 결국 질식으로 할머니는 사망을 하셨다. 그당시 과학수사는 미흡했고 사건은 답보상태에 빠졌다. 높은 국민적 관심에 맞춰 빠른 사건의 종결을 위해 경찰은 확실한 증거없이 전과가 있던 미성년자와 지적 장애인을 체포했다. 이 미성년자와 지적장애인은 구타에 못 이겨 자백했다. 그렇게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고 사건담당 검사는 판단력이 약한 피해자들을 협박해서 부인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받게 된다는 협박으로 자백을 유지시켰다. 그리고 바로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재판에 회부되었고 선임된 국선변호인은 이제와서 부인하면 형이 무거워진다고 회유해서 자백을 유지시켰다. 자백이 그대로 인정되었고 형식적인 재판만 이뤄졌다. 삼례3인조에게는 3년~6년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유죄로 확정되어 삼례 친구들이 복역 하던 중에 부산지검에서 진범에 대한 제보를 접수했다. 범인만이 알 수 있는 장소와 훔친 패물까지 정확히 진술했다. 그런데 갑자기 부산지검에서 전주지검으로 사건이 송치되었다. 석연치않게 담당 검사가 교체된 것이다. 그 검사가 바로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였고 명백한 증거에도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 수사의 결과를 뒤집어야 하는 사건을 같은 검사가 재수사하게 했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용기가 없었던 그 검사는 진범을 풀어주고 가짜 살인범을 계속 가둬두는 선택을 했다. 진범들을 풀어주며 검사가 "꼭 감옥에 있어야만 벌 받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진실이 묻히진 않았다. 진범들 중 할머니가 이상해보였을때 인공호흡을 했던 진범이 죄책감에 시달리다 15년만에 나타나 고백했다. 이 사건의 경우 이미 강도치사사건 공소시효는 만료가 되었기에 처벌이 불가능하다. 진범이 고백한 것을 보고 공소시효가 끝났기 때문에 고백한 것이 아니냐는 질타도 있었다. 그러나 진범이 고백을 하게 만든 것은 양심이었다. 자신의 범죄를 법정에 나가 자진해서 증언하고 유가족을 직접 만나 피해자에게 사죄했다.
16년 전 진범이 처음에 자백을 했는데도 풀렸났을때는 좋았단다. 그러나 그 이후 끊임없는 고통에 시달렸다. 매일 감옥에 갇혀 풀려나지 않는 꿈을 꿨다고 한다. 범행자백후 16년만에 유가족을 찾아갔고 사건 피해자의 묘소도 방문했다. 차에서 내려서 유가족한테 다가서지도 못하고 있는데 유가족이 먼저 다가와서 "고백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재심 끝에 2016년 10월 28일 무죄선고를 받았다. 미성년자와 지적장애인 3명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17년동안 옥살이를 하고 벗은 누명이었다. 하지만 잘못된 수사를 한 경찰, 검사, 판사, 국선 변호인까지 반성없이 달랑 3줄의 사과문이 전부였다.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역시 같은 구조이다. 2000년 8월 10일에 익산에서 택시기사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15세 소년이 용의자로 지목돼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와중에 진범에 대한 제보가 접수되었고 지목된 진범과 진범을 숨겨둔 친구가 자백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슈퍼사건과 똑같은 구조로 자신들을 위해 수사결과를 번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백까지 한 진범을 풀어주고 2006년 조용히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 재심 끝에 2016년 11월 17일 무죄가 확정되었고 이 경우 재심과정에서 증인으로 채택된 경찰에게 고문과 협박 같은 강압수사 여부를 계속 확인했었고 그 경찰이 증언 후 자살을 했다.
이 두 사건의 잘못된 공권력을 행사한 자들이 현재 현직 부장판사도 있고, 현직 경찰 간부도 있고 국회의원, 법원장 출신, 최대 로펌 변호사로 있다. 기대와 달리 잘 살고 있는 공권력의 가해자들...정말 믿기 힘든 현실이다.
김훈작가의 자전거여행 중 <망월동의 봄>이란 작품에서 보면 5.18민주화운동에서 군인의 총에 맞아 하반신 마비가 된 이세영씨의 사례가 나온다. 이세영씨는 이날 친구들을 만나러 나온 거리에서 무슨일인지도 모르고 공수부대 멋지다며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유없이 가해진 폭력에 화가나서 시위대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위대에 합류해서 총상을 입고 결국은 하반신이 마비된 이세영씨는 왜 다쳤냐는 자식들의 질문에 "그냥 옛날에 다쳤어"라고 말했다. 내 자식들이 군대 전체, 국가 전체를 증오하게 될까봐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세영씨는 "나는 용서를 빌러 온다면 부둥켜안고 통곡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 공권력은 사죄하러 오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도 존재하고 유족도 존재한다. 그런데 진범이 나타났음에도 해결되지 않는 사건들 속에서 피해자 유족들이 바라는 것은 "사건의 진실"이다. 사건의 진실을 밝혀준 진범이기에 유족들은 진범에게 고맙다는 말이 나온다. 진범에게까지 고맙다고 하는데 잘못을 한 공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면 과연 용서를 안 해줄까...
스타라우드 검사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도 반성하는 공권력을 보고 싶다.
특별한 재주는 없지만 이길때까지 파고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정의란 한 사례씩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국가에 책임을 묻는 소송을 준비중이고 여전히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배상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이번에는 이 사건에 책임이 있는 꼭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국가와 함께 피고로 특정해서 소송할 예정이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잊지 않고 계속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정의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에서는 현재에도 전범 처벌이 진행중이다. 나이가 90대인 사람도 법정에 세우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공소시효가 너무 짧아서 국가로 인한 피해의 책임을 묻는데 한계가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사죄하는 공권력의 모습도 보고 싶고 국가 인권을 침해한 사건에 대해 공권력의 책임을 최대화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는 국가 기구를 만들면 좋겠다. 공감대가 생기면 최순실한테 쓴 돈 조금만 보태면 충분히 만들수도 있을 것이다.
재심변호를 맡으며 진범이 아니라는 확신은 객관적 기록을 참고하여 사람에게 느껴지는 것으로 알수 있다. 그게 바로 "진실의 힘"이다. 또한 진짜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십수년간 억울하다고 주장하기 쉽지 않기에 오랫동안 무죄를 주장해온 시간도 의미있게 본다.
한 중학생이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다고 한다. 촛불집회에 사람들이 나가는데 도대체 뭐가 바뀝니까?
이번에는 탄핵의결이란 성과를 거두었지만 많은 연대의 물결들이 결과를 내지 못하고 좌초되기가 부지기수이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도 바꼈고 독립도 됐다. 우리가 이루려는 사과할 줄 알고 관용이 있는 문화는 절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뭐든지 시작이 중요하고 우리가 계속해서 형성해 나가야 할 문화인 것이다. 밀정의 마지막 대사 "실패하더라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처럼 모든 노력들이 모여 결국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다만 한 사례 한 사례씩 최선을 다해 해결해보자. 그 과정이 모여 변화가 될 것이다.
광화문에 2번 나갔다. 탄핵이 되기 직전주엔 그때는 나가야 할 것 같아서 슬찬이와 남편까지 함께 나갔었고 그 담에는 혼자 나갔었다. 김어준이 늘 말했다. 이런 집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면 힘을 얻는다고 그래서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것이라고..나는 5년전 정말 경험을 했다.
세월호와 관련하여 나는 직면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 잘못 없던 학생들이 참사를 당했다. 정말 그냥 자기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그래서 제대로 알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내 몸 편하게 사는 것이 훨씬 중요한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탄핵 되기 전주에는 탄핵의결이란 목표가 확실해서 모두들 들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다음에 갔을 때는 모인 국민들도 의경들도 다 지쳐있다고 느꼈었다. 몇몇의 잘못한 사람 때문에 모두다 이게 무슨 고생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드러난 진실조차도 끝까지 부인하고 있는 권력들에게 할 말이 없다. 열심히 잘 살아온 국민에게 위험에 처했을때 국가가 도와주지 않을거라는 불안을 안겨준 죄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고 조금은 더나은 세상을 위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 박준영변호사가 있기에 조금은 든든해졌다. 세상의 불합리에 대해 끝까지 지켜보는 일 모두가 동참하면 참 좋겠다. 포기하는 순간 더이상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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