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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블로그시작한지1년

알랭드보통의 아름다움과 행복의 예술

이런 책인지는 몰랐다. 그냥 알랭드보통의 글을 좋아하는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과 행복이 궁금했는데 공예작가들과 청주국제비엔날레에 전시감독을 했던 내용이었다. 나에겐 물건은 쓸모가 기준이다보니 아름다움을 판단하기는 좀 어렵다. 그래도 어릴때부터 은근 그릇 욕심이 있었는데 내가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그릇과 음식은 내가 생각할때 정성이자 행복인 듯 하다.

실제로 디자인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이는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가 주변의 디자인에 민감하다는 사실은 인간 심리의 까다로운 특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즉, 우리 내면에 각기 다른 여러 사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평온한 사람과 불안한 사람, 행복한 사람과 슬픈 사람이 담겨있는 데서 연유하는 것이다.
행복하고 선량한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주위에 훌륭한 가치를 전해주는 물건들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
아름다움은 사랑, 신뢰, 지성, 친절함, 정의 같은 좋은 가치들을 우리에게 넌지시 깨우쳐줄 수 있다. 미는 선의 물질적 형태라고까지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디자인된 모든 사물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 자신들이 누구인지, 그들 곁에 있는 우리가 누구일 수 있는지 넌지시 비춘다. 
공예 작품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매우 단순하고 직접적인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공예 작품은 실용적인 '동시에' 심리적인 도구라는 것이다. 도구는 몸의 연장으로, 이 세계 안에서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공예품을 통해 도움을 받고자 하는 주요 과제 중 하나는 중요한 것들이 새기 쉬운 우리 마음에서 영원히 빠져나가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어머니, 희망 또는 친절함 같은 중요한 것들을 잊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공예품을 곁에 둘 필요가 있다.
예술은 경험을 보존하는 수단이다. 삶의 경험 중에는 아름답지만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것들이 무수히 많으므로 이를 담아둘 적절한 도구가 필요하다.
예술은 복잡성을 편집하여, 인생의 가장 의미 있는 측면들에 빠른 시간 내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해준다.
예술가란 시간을 정지시켜 우리가 순간순간 소홀히 지나치는 아름다움과 중요성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을 제 일로 삼은 사람이다.
예쁜 그림은 우리가 그 그림 속에 재현된 실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우리는 이 세계의 문제와 부당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데, 그 앞에 서면 자기 자신이 지푸라기처럼 작고 약하게 느껴진다. 쾌활함은 일종의 성과물이고, 희망은 축하할 일이다. 낙천주의가 중요하다면, 이는 얼마나 낙천적으로 과업을 수행하느냐가 성과를 판가름하는 경우가 많이 때문이다.
사람의 운명은 재능 부족이 아니라 희망의 부재로 결정된다.
우리는 모두 내적으로 약간씩 균형을 잃었고, 그래서 내면의 부족함을 채워주겠다고 약속하는 스타일에 마음이 끌리게 된다.
예술작품은 우리의 성격에서 실종된 부분이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예를 들어 내적으로 혼돈과 무절제와 소란을 느끼는 사람은 평온하고 순수하고 안정적인 실내장식에 강하게 끌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도한 잔인함과 치밀함, 두려울 정도로 발전한 기술로 무장한 현대생활의 조급한 템포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압박을 받는 사람은 소박함, 자연스러움, 포근한 낡음을 속삭이는 스타일에 매력을 느끼기 마련이다.
예술작품이 우리의 가치관에 결핍된 분량을 채워줄 때 우리는 그 작품을 '아름답다' 부르고, 우리가 위협적으로 느끼거나 우리를 이미 압도해버린 기분이나 모티프에 초점을 둔 작품은 '추하다' 하며 멀리한다. 예술은 내면의 완전성을 약속한다.
선을 염원하는 마음과 관련하여 우리는 종종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아크라시아, 즉 '자제력 결핍'으로 고생한다. 더 큰 일을 해내고 싶어 하지만, 결정적인 고비에서 동기를 잃어버린다.
반복이 중요하다. 어떤 물건의 정신이 우리에게 깊이 각인되려면 그 정신을 꾸준히 반복해서 접해야 한다.
자연 그대로의 산과 시내, 꽃과 나무에 열광하는 마음은 방치와 소홀에 대한 보상심리이자, 우리가 자연과 접촉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자연과 마치 수줍은 연애를 하듯,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서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그 사랑하는 사람을 살해하고 있는데, 한 가지 다른 점은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든하다'라는 말은 순 우리말이에요. '다루기에 가볍고 간편하거나 손쉽다'는 뜻이죠.
칠기에는 소란스러움이나 과잉이 전혀 없고, 자아도취나 이목을 끌려는 욕심도 전혀 없다. 대신에 작품 특유의 가치로서 조용한 자신감이 가득하다. '우아하게' 산다는 것은 이런 뜻일 것이다. 이 칠기는 자신이 이미 존재하는 방식대로 존재하라고 우리에게 권유한다.
우아한 옻칠 식기를 통해 누구나 대접받는 느낌을 충분히 받았으면 했다.
인간의 발달과 관련하여 문제는 우리가 가진 것을 어떻게 이용하고, 결합하고, 조율하느냐에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아마 욕심만큼 '강인하거나' 부유하거나 영리하지 못할 테지만, 그래도 우리의 자질들을 최대한 이해하고 신중히 조율해낸다면 스스로를 꽤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약함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고. 약함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그 약한 가닥들을 '엮어 짜는' 방법을 터득한다면, 우리는 튼튼하고 감동적인 어떤 것을 만들ㅇ어낼 수 있다. 이 바구니에는 지혜가 담겨있다.
'지천년 견오백(종이는 천 년, 비단은 오백 년 간다)'이라는 말이 있다. 연약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을 동시에 가진 우리 한지에 영혼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는 김은혜는 끈기와 인내라는 단어가 어색할 정도로 느껴지는 현시대에 묵묵히 자신의 작업을 이어나가는 젊은 지승공예작가이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하지 않아야 돼요."
우리는 희망이 절실하다. 우리는 내면에 고요한 평정심을, 즉 자신의 가치에 대한 믿음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던진다 해도 능히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소통은 어려운 반면, 의심과 분노는 쉽게 발생한다. 따라서 서로 이야기하고, 소통하고, 관점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상대방과 마주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필요하다.
둘 이상의 사람이 일상적인 습관과 제약을 벗어던지고 아주 친밀하게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예의바르고 솔직한 대화가 가능하며, 일상에서의 의심과 증오는 큰 폭으로 줄어든다. 사람들에게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법, 그리고 용서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사실, 정말 좋은 대화는 아주 드물게 발생한다. 이는 주로, 타인과 대화하는 법은 약간의 계획과 몇 가지 능력을 요하는 기술이라기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그 방법을 아는 타고난 재능이라는 낭만주의의 신화에 우리 사회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음식을 완전히 즉흥적으로 요리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 힘들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식사하기 전이나 도중에 이야기를 나누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런 신중함이나 겸손함을 보이지 않는다. 좋은 대화를 한다는 건 이국의 도시에서 밤중에 아름다운 광장을 만난 것 마냥 우연하고 무작위한 일로 느껴진다.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알려주는 공식적인 이야기는 우리의 진정한 모습에 관해서는 귀찮은 분량을 죄다 생략해버린다. 우리는 대개 창피를 당하거나 부적절한 경계심이나 불안을 조장하지 않을까 두려워 자신이 느끼는 것을 너무 과도하게 표출하지 않는다.
좋은 대화란 음란하거나 비판적인 이야기를 솜씨 있게 피해가면서 지금까지 조심스럽게 억눌러온 감정과 생각들을 진심으로 수용하자고 서로 약속한 대화다.
우리가 흥미롭고 사랑스런 존재가 되는 순간은 우리가 약점을 드러내고, 허약함을 보여주고, 엉뚱한 공상을 고백할 때이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자신이 실패한 이야기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 사람, 자기가 갈망하는 것, 혹은 정말 넋이 나가버린 상태가 된 순간을 이야기할 때, 지루함을 느끼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로 우리는 극히 미미하고, 완전히 사라져도 무탈한 존재들이다. 우리가 없어도 세계는 전과 똑같이 굴러갈 것이다. 때로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낮추어 바라보는 것도 매우 도움이 된다. 그때 우리가 하는 일이 대단히,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절박하고 불안한(그리고 매우 정상적인) 느낌이 진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을 축소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다. 이는 사랑의 행위다.
우리는 유년의 시절, 자연 속에서의 순간들, 우리가 세계를 원근감있게 볼 줄 알았던 시절로 돌아간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더 평온해질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다른 장소에서 볼 때 우리의 근심은 새털처럼 가벼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따금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생각이 불안을 줄여주고 삶을 조금 더 평온하게 느끼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렇게 서로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서로 관심을 갖는 것부터가 사랑의 시작이 아닐까요."
서하나와 유대영에게 행복은 지금 이 시간이다. 두 작가는 현재 흘러가는 시간이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며,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외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종류의 지혜로운 작업이 필요하다. 바로, 인간의 얼굴을 항해하는 기술이다.
외모는 마치 복권과 같고, 여러분은 아마 당첨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부모에게서 사랑을 배운다. 그리고 성인이 되었을 때 종종 어떤 무의식적인 면에서 엄마나 아빠를 약간 생각나게 하는 연인을 찾는다. 좋은 소식은 종종 엄마나 아빠가 이상하거나 추하게 생겼다는 사실이다. 이는 잘생긴 사람들이 때때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상한 선택을 하는 원인을 설명해준다.
염승일은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기보다는, 보다 낯선 장소에서 금방 눈에 띄지는 않지만 진실이 담겨있는 아름다움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우리를 변화시킨다. 우리는 누군가의 잘생긴 이마, 아름답고 우수에 찬 눈빛에 보다 큰 흥미를 느끼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친절하고 관대한 표정, 신뢰할 수 있는 얼굴, 정직한 코 등을 지적하고 칭찬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유형의 아름다움에 주의를 돌린다면, 사람의 얼굴에서 훌륭하고 매력적인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머리 위로 하늘이 펼쳐져 있고 나무에는 새들이 있다는 사실이, 가벼운 바람이 창밖의 나무들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지는 것이다. 다른 순간에 일어날 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불교의 승려들은 단순해 보이는 이 심리상태를 여러 해 동안 수련하곤 한다. 우리는 그걸 잊고 말았다. 그래서 분주히 돌아다닌다.
달은 관찰하는 시공간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가졌지만, 그 본질은 한결같다. 그는 매순간 달라지는 모습이 겹겹이 쌓여 온전한 삶을 이룬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강한 바람이 불면 대나무는 바람과 함께 휘고, 바람이 그치면 다시 곧은 자세로 돌아온다. 역경이 닥쳤을 때 원래 자리를 지키며 굳게 버티는 대처능력은 개인과 국가, 양 차원에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완벽주의자들이다. 우리의 상상력은 향상된 삶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데 있어 달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비결은 어느 정도 좋으면 만족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완전한 것이 눈앞에 존재하면서도 아주 큰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한다. 불완전함을 수용한다는 것은 죄책감이 줄어든, 약간 더 건강하고 너그러운 정신세계를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고난과 장애는 이상하고 변덕스런 박해가 아니라 평범한 삶의 일부분이며,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징표이고 인정이다. 너무 일찍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우리는 그녀의 정관할 필요가 있다. 고된 투쟁은 정상이라 말해주고, 우리가 끝내 해낼 수 있음을 알아주는 완벽한 친구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때로 아름다운 것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을 때가 있어요."
오늘날 맨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벗어나 존재할 수 있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차승언에게 아름다움이란 흔들리거나 비어있는 것이다. "어떤 것에 확신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어느 순간 잘못된 점을 발견하고 그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렸을 때가 있잖아요. 절망스럽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느꼈을 때의 감정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 같아요."
사랑은 우리의 허물에 관대하고, 우리를 보다 나은 존재로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과의 동행인 것이다. 상대방의 나약함과 슬픔에, 특히 우리 자신이 그 책임을 떠안을 위험이 없을 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나 자신이 부족하다는 부끄러운 감정이 줄어들어 상대방에게 다가가 고통을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내가 누구인지를 잘 알고, 나에게 공감하는 동시에 나의 허물을 용서하리라는 믿음은, 신뢰하고 베푸는 우리의 능력 전체를 떠받치는 토대다. 사랑은 나의 당황스럽고 난처한 영혼에 대한 연인의 통찰력에 보답하는 감사의 배당금이다.
"우리의 삶은 물과 기름이 섞이는 것처럼 한 번 커다란 돌풍이 불었다가 잠잠했다가 하며 반복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동행이라는 단어를 정하고 작업에 들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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