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팟빵에서 요조가 하는 책 소개 프로그램에서 임경선이 나왔다. 요조랑 수다를 떠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둘의 친밀감이 보기 좋았다. 꽃잎이 그려진 책 표지를 고르는데 요조가 일조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책이 궁금했고 그날 방송에서 임경선이 11살의 초등학생 딸을 데리고 와서 스튜디오 밖에 있다고 했다. 초등학생 딸의 등하교를 아직도 직접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임경선의 삶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 봤다.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내가 임경선을 깔끔하고 명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찾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임경선은 시니컬해보인다. 무심한 듯 약간은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는데 그게 맞았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좋으면서도 불편하다. 나는 빨강머리앤처럼 최대한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힘든 와중에 기쁨을 찾아내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라 너무 시큰둥한 사람보다는 삶이 다이나믹해보이는 사람들이 좋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임경선의 시큰둥함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감추기 위한 포장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나랑 비슷하면서 직접적으로 많은 경험을 하다보니 세상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된 듯 하다. 그리고 열정이 넘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만에 책을 읽고 키득키득 많이 웃었다. 너무나 인간적이고 순수한 모습들이 사랑스럽다고 할 수 밖에 없었고 더욱 궁금해졌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우리 언니에게 소개해주고 싶어 <태도에 관하여>와 함께 이 책을 부산으로 보냈다. 나는 이제 임경선의 다른 책과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다른 책이나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임경선의 글>
행복이라는 단어를 낯간지럽게 여겼고 세상에 가득한 행복 담론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나약한 위로라고 치부했다. 그사이 내가 행복해지기 어려운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마음속을 정직하게 들여다봤을 때 현재의 일상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만족할 수 있는 일상을 손에 넣어야겠다는 욕망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생 별거 있어?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라며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면서 아무 변화나 행동도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나 아깝다.
욕망과 행복은 둘 다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욕망은 욕망대로 최대한 노력해서 추구하는 근력도 필요하고 행복은 행복대로 너그럽게 감지하는 촉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 욕망을 위해 행복을 포기할 필요도, 행복해지기 위해 욕망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솔직해짐으로써 타인의 비난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을 억누르면서 스스로를 미워할 것인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들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다. 확고한 가치관 위에서 심플하게 솔직해지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솔직해지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있는 그대로의 나, 라고 하는 것은 실은 '있는 그대로의 나로는 안 되겠다며 노력하는 나', 혹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나'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것들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세상에는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혹은, 세상에는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긴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스스로가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싫은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피곤한 것이 싫기도 하다. 인간관계만큼은 영혼 없이 관리하고 싶지 않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아끼고 좋아하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이라고는 나와 마음이 맞을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데려다 놓는 것 정도다.
왜 신뢰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상대가 본질적으로 '괜챃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심이 깊고 포용력이 있고 입이 무겁고 편견에서 자유로우며 인생 경험이 많다. 나이와 상관없이 정신적으로 어른인 사람들이다. 내가 만나본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대부분 독립적인 개인이었고 자신의 소신이 있는 만큼 타인의 다양한 생각을 존중할 줄 아는 유연한 자유주의자들이었다.
개인적인 사랑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가 있을 뿐, 그것은 반드시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도 않다.
적지 않은 숫자의 여성 작가들이 왜 한동안 책을 뜸하게 내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가 있다는 것은, 이렇게 글 쓰는 일에 있어서 분명히 득보다 실이 크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힘들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특히 호흡이 긴 장편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그야말로 영혼이 반쯤은 나간 상태에서 아이를 돌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이의 존재로 인해 비로소 경험하는 각별한 감정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자식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의 기쁨과 슬픔, 자식의 성장을 통해 나의 어린 시절을 되짚어보고 스스로의 결핍에 대해 알게 되는 일, 한 존재를 책임져야 한다는 뻐근한 감각. "자식이 있어야 철이 든다"라는 말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다채로운 파장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맞다.
아이는 어쩌면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나준 것만으로도 부모에게 할 도리는 다한 것일지도 모른다. 혹자는 첫 삼년 아가 시절의 사랑스러움으로 이미 평생 할 효도는 다 했다고도 한다. 아무튼 아이는 존재 자체가 기쁨이고 순수한 행복이라는 감정을 가장 자주 느끼게 해준다.
가령 아침에 딸아이가 등교할 때 같이 손잡고 초등학교까지 걸어가는 그 십오 분이 하루 중 가장 순수하게 행복한 시간이다. 아침의 신선한 공기, 하루를 시작하는 설렘, 어린이들이 만들어내는 흥겨운 소음, 희망을 약속해줄 것만 같은 환한 햇살 그리고 꼬옥 잡은 두 손
아이는 분명 그 자체만으로도 부모에게 행복을 주는 사랑스러운 존재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쓰는 일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각설하고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산문집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에 나왔던 이 문장이 가장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오직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성숙한 기쁨과 만족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독약을 먹겠다.'
남들 앞에서 말을 더 잘하고 싶다면 방법은 다 하나밖에 없다. 실제로 남들 앞에서 자꾸자꾸 말을 더 많이 해보는 것.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다.
그는 원래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저 골프가 재미있고 즐거워서 가는 거라고 하면 될 것을. 우리가 언제 각자 하고 싶은 것을 서로 막는 법이 있었던가!
남편은 골프를 치기 전까지는 그저 한 명의 책 덕후였다. 주말이면 혼자 혹은 함께 빈 배낭을 메고 보물 사냥하듯 시내의 중고서점들을 훑었고 빈 배낭을 꽉 채워 귀가하면서 새 장난감을 산 어린아이처럼 행복해했다. 그리고 그는 사시사철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살았다. 배낭을 메고 출근하면 뒷모습만은 영락없이 학생이었다. 내심 싫지가 않았고 가장 그답다고 여겼다. 그랬던 남편이 나의 기억 속의 '아저씨'를 상징하는 골프웨어를 입고 골프 교습서를 읽고 골프 대회 텔레비전 중계를 시청하고 있었다.
젊었을 때 멋진 것은 어느 정도 젊음이 뒷받침해주어서 가능하지만 젊음이라는 도움 없이도 멋지다면 그것은 분명 하나의 가치 있는 성취다.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불평하거나 투덜대거나 까탈스럽게 굴지 않고 무의미한 말을 시끄럽게 하지 않고 떼 지어 몰려다니지 않고 나대지 않으면서도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가능한 한 계속하는 것. 현재로선 이것이 내가 나이 듦에서 바라는 모든 것이다.
예술가에게 재능은 존재의 본질 같은 것. 그 재능을 어떻게 다루면서 살아가야 할까. 쳇 베이커처럼 짧고, 뜨겁고 강렬하게 불사르며 살아가야 할까, 혹은 세이모어 번스타인처럼 가늘고 길게, 겸손하고 마일드하게 살아가야 할까. 예술가들의 삶은 치열한 인생의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각자의 선택과 감당이 그 뒤를 따를 뿐, 정답은 없다.
운은 '우주의 기운'처럼 막연하게 느껴져도 나타날 때는 실질적으로 그 형태를 드러낸다. 예로, 어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나에게 효과적인 도움을 주거나 적절한 타이밍에 기회가 주어지거나 하는 것들이다. 운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독립적인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재능과 노력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면 행운이 내게 찾아와도 그걸 잡을 힘이 없거나 그것이 행운의 기회라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재능과 노력이 서로를 최대치로 상승시키며 앞으로 나아갈 때 나에게 강력한 기운이 생기며 사람들은 그 긍정적인 기운에 저절로 이끌려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한다.
행운이 있으면 불운도 있기 마련이다. 어디로든 나아가는 과정에는 반드시 불운도 틈새에 끼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설사 불운이 나를 움츠러들고 좌절하게 만들었다해도, 그것을 털어내고 다시 걸어 나갈 수만 있다면 다음에는 행운이 슬그머니 뒤에서 나타나 등을 힘차게 밀어줄 것이다.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같은 동작을 보통 이십 회씩 두세 세트 반복해야 했다. 동작을 반복하는 것은 지겨웠지만 담당 트레이너는 그 반복된 담금질이야말로 몸을 변화하게 한다고 조언했다. 재미가 없어도, 의미가 없어 보여도, 반복을 거듭해야만 비로소 체득하는 무엇이 있다는 뜻이었다. 사소해 보여도 꾸준히 일관되게 해나가는 것이 중요함을 알았다.
편하고 익숙한 것들을 넘어 조금씩이라도 새로 도전하거나 무리하지 않는다면 현상 유지는 될지 몰라도 실력이 늘지 않는 이치와 같다.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라고 단정 짓던 그 수준을 스스로의 힘으로 뛰어넘어야 한다.
-임경선이 소개한 작품들-
파이이야기, 줌파라히리의 [저지대], 소설집 [그저 좋은 사람], 김애란 [비행운],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이 될 때], 재즈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의 인생을 그려낸 <본 투 비 블루>, 그리고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인생을 그려낸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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