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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블로그시작한지1년

[책]은희경의 '소년을위로해줘'

5년전 서울에 올라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책을 읽었었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이 책 속의 엄마 '신민아'씨 같은 엄마가 될거야 라고 말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결혼도 육아도 아무 관심이 없을텐데 그런 말을 한 것을 보면 난 항상 좋은 엄마를 그리고 꿈꿨던 것 같다.
2016년 11월 21일 아빠 제사라 부산에 갔다. 그리고 이 책이 보여 들고 올라왔다. 그리고 다시 읽어보았다. 은희경 특유의 재밌고 편한 문체인데 읽는데 꽤 시간이 걸렸고 읽다 말다를 반복했다. 5년전과 지금 내가 좀 많이 달라진 듯 하다.

다시 봐도 신민아씨는 참 멋진 엄마다. 아들 연우와 스스럼 없이 지내는 모습, 서툰 엄마역할이 조금은 버거웠어도 본인 스타일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여전히 좋다. 그러나 엄마의 불안이 아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예전에는 생각을 못했었다.
17살 소년 연우는 보통의 고등학생과 다르다. 좀더 어리고 떼써도 되는데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예전엔 저렇게 엄마를 이해해주는 연우가 있어 신민아씨는 좋겠다고 생각했던거 같다.
세상의 모든 일에 심드렁한 연우가 태수를 만나고 채영을 만나면서 세상과 처음으로 소통하고 관계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 또한 고등학생 연우, 태수, 채영이 바라보는 어른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들었다. 꼰대같이 살고 싶진 않았는데...신민아씨처럼 끝까지 살아간다는건 정말 어려운 일 같다.
가볍지 않고 생각할 거리들이 참 많은 책이다. 내가 늘 생각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들...우리 모두는 낯선 우주의 고독한 떠돌이 소년...이란 표현.
이 소설 속 인물들이 고독하지만 유쾌하고 불안하긴 해도 냉정하기를 바랐다는 작가의 말이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이어서 이 책에 더욱 끌린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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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있는 사람은 그가 바라보게 될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옷을 산다. 그런 상상 없이 그냥 오랫동안 보아온 나라는 사람이 걸칠 옷을 살 때는 단지 배가 고파서 밥을 먹는 기분처럼 조금 쓸쓸하고 건조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귀고리와 킬힐과 숄더백을 사겠지만 그것은 초라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이지 멋져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이 없어지면 되나 안 되나 한번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짐부터 싸는게 신민아씨 스타일이다.

공부 잘하기 싫은 애도 있을 수 있지 뭐. 근데 귀찮아서 그러는거지? 한번 잘하기 시작하면 계속 잘해야 하고, 듣자하니 공부란 끝이 없다는데, 시간도 엄청 뺏길 테고.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되긴 하지. 근데 그게 훨씬 더 어려울 걸. 내가 남하고 다르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 그거 몹시 힘든 일이야.

재미없는데도 꾹 참으면서 남들한테 맞춰 살지는 말자.

나는 욕망, 꿈 이런거 없어. 불리한 내 삶을 책임지면서 살 뿐이야. 이런 불리한 조건으로 굳이 시스템 안에 들어가서, 불량품이라고 모멸감 느끼며 살고 싶진 않아. 나 같은 사람이 자존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건, 가진 게 그것뿐이기 때문이야.

포기할 건 포기하고, 인생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단출하게 꾸려서 새로 살아봐야겠다

너하고 살아봐야겠다 마음 먹으면서 나는 세상을 다시 믿어보기로 했어.

비굴한 친절. 엄마는 친절을 성의껏 실천하면서 산다.

도움받아야 할 때에 도움 못 받는 거, 그런 걸 고립이라고 하는거야. 고독은 늘 있는 거고 또 자기 문제지만 고립은 달라. 절망하고 상관있단 말야. 내가 너한테 도움을 줄 수 없어서 일이 크게 잘못됐다. 그거 나한테 아주 나쁜 짓 하는거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니 상상려과 이해력 영역이 저절로 향상되는군.

싫어하는 걸 하면 그것도 특별한 일이 될지 모른다

성장이란 자신이 서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자각하는 거야. 성숙이란 일종의 균형 잡기야.

스스로는 강한데도 약한 척해야 하는 게 지겨운 여자가 한 명 있는 곳마다, 상처받기 쉽지만 강하게 보여야만 하는 게 피곤한 남자가 하나 있다.
항상 모든 걸 다 알아야 한다는 기대에 부담을 느끼는 소년 한 명이 있는 곳에, 자신의 지성을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지쳐버린 소녀가 하나 있다.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듣는게 지겨운 소녀 한 명마다, 자신의 연약하고 흐느끼는 듯한 감성을 숨겨야 하는 소년이 한 명 있다.
-낸시 스미스-

연우야, 내가 바라는 너의 미래는 말야. 한량이야. 쉽진 않지. 돈 안 벌고 놀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우선 돈을 버는 방법부터 익히는 게 한량이 되는 첫걸음일걸. 실력이 있으면 돈 쉽게 벌어. 꼭 공부 얘기는 아니고. 공부 안 하고 실력 쌓는 거까지는 나도 모르지. 거기서부터 네가 알아서 하는 거야.

연우야, 너도 나도 세상의 우등생은 못 되잖아. 나, 능력도 별로 없고 돈도 많이 없어. 너도 죽어라 노력해서 뭐가 돼보겠다는 그런 식은 아닌 애고, 우리 둘 다 나약하고 이기적이지. 먼저 그걸 인정하고 난 다음에, 그리고 서로 의지하자구.

어쩌면 사람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실수를 하는 건지도 몰라.

가끔은 한 공간에 같이 있다는 존재감 자체가 신경이 쓰이더라구. 특별히 보살펴줄 것도 없잖아. 근데도 괜히 성가신거야. 부담스러우니까. 그러다보니 또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해지고.

기념일을 함께 보내는 것이 따로 시간 내서 챙기는 대화시간이나 여행처럼 가족 행복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채영 아빠

아무리 별볼일 없는 사람에게도 주관과 취향이란 건 있다.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 참을 수 있는 것과 참을 수 없는 것, 소중한 것과 하찮은 것,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타인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망 말이다.

충고하기 위해 상대의 말을 듣는 척하는 인간, 말이 시작되자마자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결론을 내려버리는 인간들 앞에서는 도대체가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특히 나 자신에 관해서라면, 한마디도 해주고 싶지 않다.

어른들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무조건 고집이 세다고 말한다.

제일 싫은 게 바로 그런 독선과 불신이다. 도대체 몇 번이나 기회를 주었다고 팔을 꺾어버리는 걸까.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실수에는 관대하다. 잘못했다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