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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블로그시작한지1년

고마운 사람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하고 참 좋은 것이 내 주변의 좋은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정말 고마운 사람도 많고 내가 세워뒀던 경계의 벽이 좀 넓어졌다. 그리고 그들 덕에 지금의 내 모습이 되었다. 사람들, 인연 또한 나의 역량과 상관이 없다. 그 인연을 유지해나가는 것은 나의 선택이고 그들을 좋아하는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앞으로의 나를 기대한다.
1. 부모님
우리 부모님은 정말 성실과 정직 자체이셨다. 두분다 경제적 여유가 없다보니 집에서 살가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지만 두분 덕을 본 게 참 많다. 우리 아빠는 아마도 머리가 참 좋았다. 꽤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사업이 아닌 공무원 같이 안정적인 직업을 하셨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참 공정하게 잘 살아가셨을 것 같다. 그리고 똑똑한 아빠와 3명의 자녀들이 우리 엄마는 참 부담스러웠을 듯 하다. 그럼에도 자리를 지키고 짜증을 내더라도 꼭 해야할 일은 다 해왔다. 그 모습들을 보고 자랐기에 우리 3명 다 무난한 인생을 살 수 있다.
2. 친구들
지금 자주 연락하고 있는 친구는 중2때 친구 1명, 고2때 친구 2명, 대학교때 친구 1명이다. 중학교때 친구인 맹희가 내 인생의 시작인 것 같다. 그 이전에 친구들에게는 뭔가 상처를 주고 받고 많이 어렸고 나와 맞지 않는 친구들이었다. 맹희덕에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고 내 가치관 정립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고2때 친구인 정혜와 지윤이의 경우 첫날 정혜가 옆에서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면 우린 친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윤이는 약간은 내성적이라 옆에 앉아 있는데 아무말없이 영어독해를 하고 있던 내가 얼마나 불편했을지...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참 싸가지가 없었다. 그 친구들이 천주교 신자였고 명확한 인생의 목표가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래서 지금의 내 모습에 가장 긍정적 효과를 준 사람들이 이 친구들 같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고 첫 동문회를 갔다가 좌절했었다. 내가 나한테 무슨짓을 했는지 그때 깨달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했고 그때 즐겁게 여유롭게 사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 대학교 친구인 수진이다. 무언가에 불안하거나 연연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에 집중해서 사는 법을 알려줬다. 수진이와 디아블로를 했던 그 시절 참 재밌었다.
3. 신부님들과 명동4자매
서울에 올라오고 고2때부터 의문이었던 성당에 갔다. 이왕 갈거라면 명동성당을 가야지라고 늘 생각했었고 31살에 실천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때 예비자교리에서 만나 나를 포함한 명동4자매 덕에 나는 예비자교리를 무사히 마치고 지속적으로 성당에 나갔다. 나는 올해 2월까진 무신론자였고 삶이란 내가 생각한만큼 노력한만큼 이뤄지기에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예비자교리때 신부님의 말씀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으며 열심히 하는 예현이가 신기했다. 연애도 안 하고 혼자 살때다보니 시간적여유가 있어 일상의 이벤트로 성당에 다녔다. 그렇게 양경모 신부님과 자매님들이 아니었다면 이탈리아에도 안 갔을 것이다. 내 삶에 해외여행이란 이런 거구나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 진영, 나윤언니 덕에 내가 연애를 하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종교를 의심하고 있다. 신이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종교는 개인의 선택이고 나는 천주교의 교리가 좋고 고마운 신부님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내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열심히 해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신을 깨달은 것은 슬찬이, 즉 생명 때문이다. 삶과 죽음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니 삶에 여유가 생겼다. 삶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나의 역량과 관련된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그러나 김한수 토마스신부님의 1시간만 그분께 돌려드리자는 그 말씀은 늘 내 마음에 남아있었다. 내 삶 자체가 내 선택이 아니었다는 점이 신에게 의지하게 만든다. 마냥 내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내것이 아닌 것만 같다는 느낌이 어렴풋이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아씨시에서 세례1주년 기념 미사를 해주신 양경모신부님, 돈잔치인 결혼식 대신 혼배미사만 하려하니 성당에서 거부해서 상처를 좀 받고 고민하다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것도 정성들여 준비해주신 박힘찬신부님께 너무나 감사드린다. 이 분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며 사는 것이 나의 신앙생활이다. 그리고 이런저런 고민을 정리하고 다시 성당에 갔을 때 만난 사제로서 첫 걸음을 걷고 계신 강문식 신부님의 메시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가 나의 신에 대한 의문의 시작이었다. 여전히 종교에는 의문이 많지만 신은 있고 신이 바라는대로 사는 것이 내가 행복한 길이다.
4. 오빠, 언니 그리고 나
오빠와 내가 3살터울에 언니가 거의 중간에 있다. 그러다보나 자랄때 거의 같이 자랐다. 크게 엇나가지 않고 잘 자란 것이 부모님의 영향도 있지만 가정내에서 3명 적당히 경쟁하며 사회성을 길렀던 듯하다. 장남이자 유일한 아들인 오빠에게로만 가는 특권의 부당함을 느끼지만 반항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재능많은 언니에게 느낀 열등감과 것도 어쩔 수 없다는 것...아마도 셋째로 태어난 나는 끊임없이 생각하며 오빠와 언니는 아무 생각없는데 혼자서 경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오빠는 중학교때 아이큐가 학교에서 제일 좋다고 해서 그때부터 124로 평균인 내 아이큐가 못마땅했었고 전교회장을 하며 늘 평균90점 이상 받던 언니는 상으로 만원 받을때 89점을 받아 우울해하면 5천원이라도 받으며 이를 갈았던 듯 하다. 나는 타고나길 늘 최고로 잘 하고 싶었던 듯 하다.

그리고 서울에 오고 만나고 사적으로 연락하는 직장동료 중 엄마들 덕에 삶에 대해 늘 생각한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하게들 살아가는 모습이 참 좋다. 이렇게 내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평범하게 무난하게 잘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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